사도행전 18:1-4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아굴라 부부를 발견하고 함께 거하며 함께 일했고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하는 일에 힘썼다.
이전 말씀에서는 바울이 아레오바고 의회에서 부활에 관해 증언했을 때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소수의 믿는 자들도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가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고 회당서 토론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했다.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 로마가 완전히 파괴한 도시였는데 약 100년쯤 후 율리우스 시저가 죽기 전 재건한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당시 고린도는 대부분의 중요한 건물들이 100년이 안된 새로운 도시였던 것이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제국 영토 안에서 최고로 화려하고 번영했던 신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는 건물만 화려한 신도시가 아니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테네가 1만명 정도였는데 고린도는 20만명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고린도가 2년마다 열리던 Isthmian Games을 개최하며 부와 문화를 뽐냈고 또 고린도는 당시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적 특권을 자랑했다고 한다. 또 약 2000피트 높이의 Acrocorinth 산 위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는데 천여명의 여자들이 신을 섬기며 몸을 파는 일을 했다. 그 여자들은 밤이 되면 도시로 내려와 몸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고린도는 화려하고 부유한 최고 번영했던 도시였지만 동시에 성적으로 난잡한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낮아지고 자기를 부인하라는 십자가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탓으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으려 베레아까지 쫓아왔었다. 바울은 그래서 도망쳐서 아테네로 갔다가 고린도까지 도망쳐 온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바울은 몸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는 어느 도시보다 교만한 사람들인데다고 우상숭배도 최고로 심한 도시여서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2:3절에서 "약하고 두려워하고 몹시 떨었으며" 라고 한 것이다. Stott는 이러한 상태에서 바울은 교만한 고린도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면서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고 한 것이다(Stott, 296).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2절에서 아굴라 라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을 만났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아굴라 부부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두 사람이 이미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어는 발견했다는 뜻이다. 아굴라가 이미 신자였기에 발견했다고 한 것이다.
발견했다는 말은 이렇게 약하고 두려워하며 몹시 떨었던 바울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부인은 브리스길라이고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만약 바울이 이들 부부를 고린도에서 만나 전도했다면 이들의 개종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 이들 부부는 클라우디오스 황제 때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요셉푸스에 따르면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을 당했다고 했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갔다. 이들 부부는 약하고 두려워하며 몹시 떨었던 바울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3절은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천막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천막은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가죽을 다루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들이 사실은 가죽 직공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시 2년 마다 고린도에서 열리던 이수미안 게임 때는 특별히 바쁘게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에 온 목적은 천막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4절에서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했던 것이다. 토론이나 강론으로 번역한 말은 17:2-3절에 나온 방식대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던 바울의 전달 방식을 뜻한다. 더구나 토론이나 강론으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한 번 했다는 뜻이 아니라 안식일 마다 계속해서 끈질기게 토론했다는 뜻이다. 이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설득이나 권면으로 번역된 말도 끈질기게 설득하기 위해서 라는 뜻이다. 바울은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일로 그렇게 핍박을 받았는데도 계속해서 힘들게 일하면서 끈질기게 설득하기 위해 회당에 가서 끈질기게 강론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