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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16:19-24

Dawn Word

사도행전 16:19-24

사람들을 두려워한 치안관들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3. 7.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6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6:19-24 여종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돈벌이의 희망이 떠나가자 바울 일행을 잡아 그 도시의 치안관들에게 끌고가 유대인이고 그 도시에서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로마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고소를 했고 치안관들은 바울 일행을 매로 치게 하고 옥에 가두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파이싼의 영에 사로잡혀 점치는 여종을 만났는데 그 여종은 바울 일행을 계속 따라다니며 지극히 높으신 신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계속해서 외치며 따라다니자 바울은 그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여종의 주인의 고소로 바울 일행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내용이다.

19-24절은 이 여종의 주인들의 반응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여종을 치료해준 바울과는 반대로 여종의 주인들은 여종에게서 악한 영이 나가고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의 돈벌이가 사라진 것에만 분노했었다. 돈벌이나 이익으로 번역된 말은 본래 일이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기술자들이 일을 해서 물건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사도행전 19:24-25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고 할 때도 나온 말이다.

그 돈벌이의 희망이 끊어졌다고 했는데 원어는 나갔다는 뜻이다. 18절에서는 귀신이 나갔고 19절에서는 돈벌이의 희망이 나갔다고 한 것이다. 다수는 이를 누가의 의도적인 언어유희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반복은 누가의 의도적인 것이고 바울이 그녀를 사로잡은 귀신을 쫓아냈을 때 그들의 수입원도 쫓아낸 것이다. 한글이나 영어번역들 모두 원어의 이러한 언어유희를 살리지 못했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여종을 불쌍히 여겨 귀신이 나가게 했는데 이 여종의 주인들은 귀신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돈벌이의 희망으로만 본 것이다.

이들은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시장에 있는 관원들에게 끌고 갔다. 19절에서 종의 주인들이 끌고 간 사람은 바울과 실라 뿐이다. 디모데나 그 밖의 일행을 함께 잡아가지 않은 이유를 바울과 실라가 중심인물이고 나머지는 덜 중요한 인물로 보았거나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다.

새번역은 광장이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시장을 뜻하는 오래된 말인 저자라는 말로 번역했다. 개역개정은 장터로 번역했다. 원어의 본래 의미는 장터이기에 개역개정의 번역이 가장 자연스럽다. 영어 번역들도 대부분 Marketplace로 번역했다. 그러나 문자적인 의미는 장터이지만 재판정이 있던 곳이기에 광장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새번역은 자연스러운 의미를 살리려고 광장으로 번역한 것이다. 바울 일행을 장터로 끌고 간 것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에서는 장터에 재판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들에서는 성문 밖에 재판석이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에서는 대부분 장터 한쪽에 재판석이 있다.

지금도 그리스의 빌립보에 가면 아고라 라고 부르는 시장거리에는 돌로 새겨진 재판석이라고 새겨져 있는 유적이 있고 그 인근에 감옥의 유적도 있다. 그 재판석과 감옥의 유적이 2세기 것으로 추정되지만 바울과 실라가 재판을 받고 갇혔던 곳에 다시 지어졌을 것이다.

20-21절에서 여종의 주인들은 돈벌이의 희망을 빼앗겼다고 고소하지 않고 엉뚱한 죄목으로 고소를 했다. 그들이 바울일행을 고소한 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매우 혐오하고 적대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먼저 이들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혐오감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둘째는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 것도 역시 도시에서 소요가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21절에 나오는 대로 로마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예들까지도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도 당시 로마 사람들은 물건 취급하던 여자 노예를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재로 보고 불쌍히 여겨 귀신을 쫓아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로마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복음이 확산된다면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예들이 남자 주인의 말에 불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 질서를 파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인 손실에 분개했으면서도 그러한 이유로 고발하면 자신들의 사악함이 드러나기에 이렇게 자신들의 분노를 모두가 함께 공감할 분노로 바꾸어 고발한 것이다. 22절 앞부분에 보면 무리가 합세하여 증인으로 나서서 바울 일행을 함께 공격했다.

22절 뒷부분에서 시의 치안관들은 로마에서 파견한 집정관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이다. 무리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무리들의 말을 따랐던 빌라도와 똑같이 행동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재판도 하지 않고 옷을 찢어 벗기고 그들을 매로 치라고 명령했다.

23절에서 그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바울 일행에게 매질을 많이 했다. 바울 일행은 수많은 군중들의 야유를 들으며 옷이 찢겨진 채 매를 맞은 것이다. 온 몸이 멍들고 살이 다 터지고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보다 더 큰 것은 수많은 무리들 앞에서 옷이 찢겨진 채 매를 맞은 수치심이다. 감옥에 가두고 간수들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했다. 이들 집정관들은 귀신을 몰아내는 기적을 행한 소식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듣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군중들만 두려워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준 것이다.

24절에 보면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바울 일행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고 했다. 깊은 감옥은 중죄인들이 갇히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토굴 같은 곳이다. 더럽고 악취가 나는 곳에 피투성이가 된 채 던져진 것이다. 게다가 차꼬는 누울 수도 없고 몸의 자세를 바꿀 수도 없도록 만든 아주 불편한 것이라고 한다. 밤이 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하고 몸을 비틀면서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도록 만든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대조가 되는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여자 노예도 불쌍히 여겨 귀신을 쫓아내 준 바울 일행과 여자 노예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던 노예의 주인들이다. 바울 일행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로 보고 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주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없기에 노예를 가축 정도로만 취급하여 착취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바울 일행과 사람을 두려워하는 로마제국의 집정관들이 대조된다. 예수께서 책망하시던 바리새파 사람들 역시 하나님 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사람들 보는 데서만 의롭게 보이려고 했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는지 보면 진실한 신앙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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