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39-41 바울과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시리아와 길리기아 교회로 가서 모든 교회를 튼튼하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그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파한 도시에 가서 형제들을 살펴보자 할 때 바나바는 마가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바울은 반대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결과 바울과 바나바는 다툰 뒤 갈라져서 두개의 선교 팀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39절을 보면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었다고 했다. 심하게 다투었다는 말은 본래 자극한다는 뜻이다. 신약성서에서는 딱 두 번 나오는데 또 한번은 히브리서 10:24절에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히브리서에서는 설 자극하여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서로 자극하여 그 결과 갈라서게 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서로 갈라 선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갈라디아서 2:11-14절을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간 것이 나온다. 갈라디아서에 나온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바나바는 이방인 선대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바나바가 이 부분에 대해 감정이 남아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성경을 근거로 추측하기 보다는 본문 자체의 내용과 문맥에 때라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옳다. 바나바는 한번의 실패로 그의 평생을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고 바울은 요한 마가의 기독교적 인격을 평가한 것이 아니고 또 다시 전처럼 다시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거나 두 사람의 사역이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본문의 전후문맥에 따르면 바나바는 마가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자는 입장이었고 바울은 이미 한번 버리고 떠난 마가는 죽이려고 노리는 심한 핍박을 마가가 견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나바는 바나바는 결국 마가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구브로로 갔다. 이 후 바나바는 사도행전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 후 사도행전의 초점은 바울에게 맞추어져 있다.
40절에서 바울은 실라를 선택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갈라진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것도 역시 성령님께서 간섭하신 일이다. 실라는 바나바보다 이방인 선교에 더적합한 인물이었다.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전달하는 증인으로 파송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어디에서든지 분명하게 해명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다수는 실라가 로마시민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와 연결되어있는 사람이기에 새로운 사역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라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도 연결이 되던 사람이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에게 더 적합한 짝을 붙여 주신 셈이다. 바울은 형제들로부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사를 받고 길을 떠났다.
41절에서 바울은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돌아다니며 교회들을 튼튼하게 했다. 이 때 바울이 배를 타고 가지 않고 육지로 간 이유를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바울 자신이 든든히 서게 한 교회가 거기에 있었다. 둘째 바람이 동쪽으로 부는 계절이었기에 서쪽으로 여행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이러한 분열의 결과 두개의 선교 팀이 만들어진 셈이다. 바나바와 마가는 구브로에 가서 고향 지역 교회를 튼튼히 했다. 바울도 바나바와 그곳에서 전도 했지만 그곳은 바나바가 갔기에 바울이 갈 필요는 없어진 셈이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육지로 난 길을 따라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다니며 교회를 튼튼하게 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두 사람이 갈라진 것도 잘 마무리 해 주시고 두개의 선교팀을 이루도록 해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