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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15:19-21

Dawn Word

사도행전 15:19-21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만 금하도록 편지로 써서 읽어주게 한 야고보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2. 20.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5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5:19-21 야고보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우상숭배와 연관된 네 가지만 금지하도록 편지로 써서 보내 모일 때 마다 읽어 줘서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모세를 전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야고보는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셔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고 남은 자들인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들이 주룰 찾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말씀은 야고보가 구약성경을 인용한 뒤 이방인들을 괴롭게 말고 최소한의 지킬 것만 요구하자고 권면하는 내용이다.

19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베드로가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으므로 라는 뜻이다. 이제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인 야고보가 판단하는 것이다. 개역은 내 의견이라고 했고 새번역은 내 판단이라고 했지만 이는 회의를 통해 결정된 내용을 발표한다는 뜻이다. 원어에서 판단이라는 말은 의견보다는 훨씬 강하고 법령이라는 말보다는 약한 의미이다. 어떤 단체든 공식적인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교회가 성도총회를 통해 결정한 것이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것과도 같다.

그 판결은 두가지를 서로 대조하고 있다. 19절 끝부분에 있는 괴롭히지 말라는 말과 20절에 있는 편지로 써주라는 말이 서로 반대말로 대조가 되는 것이다. 괴롭힌다는 말은 신약성서에서는 여기에서만 나온다. 이 단어는 "곁에서" 라는 말과 괴롭히거나 병들게 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사사기 14:17절에서 삼손의 블레셋 아내가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려달라며 곁에서 계속 괴롭히는 장면에서 나왔다. 16:16절에서는 들릴라가 어떻게 삼손을 결박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알려달라고 곁에서 계속 괴롭히는 장면에서도 나왔다. 이는 곁에서 계속해서 아프게 하거나 괴롭힌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나 율법을 지키는 문제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계속해서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한다는 뜻이다. 유대인 성도들이 요구하는 할례도 오랫동안 괴로운 일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할례는 정말 큰 고통이었다. 그렇게 생식기에 기록해 줘서 계속해서 괴롭게 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이 말과 짝을 이루는 반대말이 편지를 쓰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편지를 써 보내는 것은 한번 읽고 버리는 경우가 아니라 두고 두고 계속 간직하며 읽어야 할 때 쓰는 것이다. 그 경우 편지는 양의 가죽이나 파피루스에 썼다. 생식기에 새기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의미를 생각하겠지만 나중에는 무감각해져서 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20절은 생식기에 써주는 것보다 양의 가죽에 써주고 계속 읽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다음 내용들을 써서 계속 읽어주고 듣게 하라는 뜻이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상관이 없는 것들이 모아진 것처럼 보인다. 이를 십계명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다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야고보가 양의 가죽이나 파피루스에 써서 매주마다 읽게 하라고 한 것은 네 가지를 멀리 하라는 것이다. 부정한 것들이니 멀리 두고 근처도 가지 말라는 뜻이다. 할례와 율법이 아니더라도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면 그게 더 낫다는 뜻이다.

첫째는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이다. 이는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로 사용했다가 시장에서 파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을 경배하는 예배에 참석해서 그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근처도 가지 말라고 했으니 우상에 대한 예배에 참석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예배가 끝난 뒤에 음식만 먹는 자리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과 우상의 신전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결국 그들의 우상들과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음행이라는 말도 역시 우상의 신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신전의 여 제사장들과 성관계를 갖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대부분 음행이라는 단어를 구약에서 금지된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수간 같은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어떤 이들은 레위기에서 금지한 성관계의 가능성과 우상숭배와 연관된 성적 부도덕의 가능성 두가지를 함께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이방인들도 모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이었다. 문맥상 이방인들은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인데 유대인들에게는 죄인 것이어야 한다. 또 네가지는 모두 이방신을 섬기는 제의와 연관이 있는 것이기에 문맥상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또 목매어 죽인 것이란 이방 사람들이 우상에게 드릴 돼지를 목을 매어 죽인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제물의 목을 따서 피를 다 쏟아 내지만 이방인들은 돼지의 목을 매어 죽이고 그 피를 쏟지 않았던 것이다. 또 뒤에 나오는 피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연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해석한 것이다. 이는 목을 매서 피를 쏟지 않은 제물을 먹지 말라는 뜻이고 또 그 피도 먹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린 뒤에 음식을 먹는 일을 말한 것이다. 이 네가지는 모두 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21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할례를 받게 해서 몸에 써주지 말고 양의 가죽에 편지로 써서 보내야 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예로부터 어느 도시에서든지 모세를 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매주 읽어 주는 것은 금해야 할 음식들과 부정한 것들이 무엇인지 읽어주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할 유대인들은 지중해 연안 어디에나 다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된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몸의 가죽에 쓴 것 대신에 이 네 가지만 양의 가죽에 써서 읽어줘서 유대교 율법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할례와 율법을 지켰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흡수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비록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했지만 할례와 율법이 이방 민족들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어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싸운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인들의 경계선은 율법과 할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오랫동안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세상과 구별하려고 한다. 잘 차려입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거룩이라 생각하고 경박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알게 모르게 높은 벽을 쳐 놓고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경계선은 그러한 눈에 보이는 거룩이 아니라 사랑이다.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더라도 하나님 뜻이기에 순종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불신자들과 구별하는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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