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6-9 논쟁이 심각해지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할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의 생각을 다 아시고 정결하게 하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게 하셨다고 증언하는 내용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예루살렘 교회의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하자 전에 바리새파였다가 완전히 믿게 된 성도들 중 일부가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일어나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며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논쟁이 심각해지자 6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문제를 놓고 모임을 소집했다. 4절에서는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했는데 6절에서 회의를 할 때는 교회 즉 일반 회중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도들과 장로들이 회의를 주도한 것이고 나머지 회중들은 그 자리에서 듣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주관하고 다른 성도들은 듣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12절에서 다시 일반 회중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옳다.
13:1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들이 지도자들이 지도자들로 등장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지도자들로 등장한다. 여기서 사도들이란 열 두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따라다니며 배운 사람들이고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예수님께 직접 받은 사람들이다. 열 두 사도를 말할 때 누가는 항상 "열 둘"이라는 단어를 썼다. 장로들이란 오늘날 교회의 장로들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장로라 불렀다.
원어에서 7절은 많은 논쟁들이 이루어진 뒤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논쟁이나 변론으로 번역된 말은 본래 원어에서 찾는다는 뜻이다. 공개적인 질문과 토론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본래 바리새파 출신의 신자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보고하는 것을 중단한 뒤 소집한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의에서 공개적인 질문과 토론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바리새파 출신의 신자들의 입장을 따라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들과 바울 일행의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했다. 베드로는 격렬하게 논쟁을 하고 있던 성도들을 향해 "남자 형제 여러분" 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몇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이다. 여러분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들 가운데서 나를 택하셨다고 했다. 새번역에서 일찍이 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개역처럼 오래된 옛날 일이라는 뜻이다. 이 때는 베드로가 고넬료 가족에게 복음을 전한 지 약 10년쯤은 지난 뒤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래전에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고 믿게 하시려고 베드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일인데 어째서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8절에 나온 대로 "마음 속을 아시고 성령을 주셨다는 것이다. 마음을 아신다는 말은 심장이라는 말과 안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로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누가만 사용한 말이다. 사도행전 1:24절에서도 한 번 더 나온다. 1:24절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썼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심장이란 생각과 지식이 자리잡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과 지식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마음 속에 믿음이 있는 것을 다 보시고는 그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셨다는 것이다. 그 성령은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내린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고넬료와 그 가족들은 베드로 앞에서 신앙고백을 한 적도 없다. 사람의 속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넬료 가족의 속 마음을 다 보시고 바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성령을 내려서 베드로에게 증거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는데 어째서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셋째는 9절에 나온 대로 유대인들과 이방인인 고넬료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율법과 할례를 주시고 지키게 하신 것도 사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성령을 내리셔서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정결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할례와 정결법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할례와 정결법은 내적인 정결을 잊지 않고 이루도록 하기 위해 주신 기억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할례를 주셔서 남자들이 소변을 볼 때마다 왜 할례를 받았는지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살라고 주신 것이다. 율법 규정들도 할례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정들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놓고 새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이제 규정은 하나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고넬료와 예루살렘 성도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모두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는데 어째서 반대를 하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