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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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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4-5

이방인 전도를 환영한 예루살렘 성도들과 반대한 일부 사람들

2025. 2. 14.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5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5:4-5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예루살렘 교회의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하자 전에 바리새파였다가 완전히 믿게 된 성도들 중 일부가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할례를 주장하던 유대에서 온 사람들과 바울과 바나바와 심각한 논쟁이 생겼기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몇 성도들을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가게 했다. 그들은 가면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지나며 이방인들이 회개한 일을 전하여 그곳 성도들을 기쁘게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이 예루살렘 교회의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하자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4절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말이 사도와 장로들이라는 말과 나란히 놓인 것을 볼 때 교회란 사도와 장로가 아닌 모든 성도들을 뜻한다. 이는 온 교회 구성원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뜻이기에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할례를 주장하고 대다수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전도를 기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4절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말은 2절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 일행을 예루살렘으로 파송했다는 말과 3절 앞 뒤에서 짝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4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환영했다는 말은 2-4절의 중심인 3절에 나오는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여 회개한 일을 전한 것을 알고 환영했다는 뜻이다. 이이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신 모든 일들을 모든 성도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보고했다.

이번에는 3절에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의 성도들에게 한것처럼 철저하게 설명하고 안내했다고 하지 않고 단순히 공식적인 보고를 했다고 했다. 페니키아와 사마리아의 성도들은 대부분 새로 믿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경험한 사람들이고 죽으심과 부활을 비롯해서 모든 내용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약성경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아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공식적인 보고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 일이란 3절에 나오는 이방인들이 회개한 일이다. 율법과 상관없이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증거가 너무나 분명하기에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5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바울 일행의 보고를 듣고 있던 몇 사람이 일어서서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끊고 반대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는 이들이 전에는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믿게된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개종하기 전에 바리새파였던 일부 크리스천들이 이방인 개종자들은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유대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한 파벌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1절에서 안디옥 교회에 내려온 사람들과 이들은 같은 파벌에 속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게 해야 하고 모세의 율법도 지키도록 명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1절에서 안디옥에 왔던 사람들은 할례를 주장했지만 이들은 할례 뿐만 아니라 율법도 다 지켜야 한다며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만 거룩하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에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들은 어려운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왔는데 이방인들은 무시험으로 들어왔기에 질투하는 마음으로 "It's not fare" 라고 따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실 그동안 자신들이 힘이 없어서 이방인들에게 강제로 할례를 받도록 하지 못한 것이다. 힘만 있으면 유대인들은 유대인이건 아니건 모두 다 할례를 받도록 했다. 요셉푸스의 기록을 보면 유대인들이 잠시 독립하고 힘을 갖게 되었던 하스모니안 왕조 때 그 영토 안에 살던 사람들은 이방인들까지도 강제로 할례를 받도록 했다. 하스모니안 왕조의 통치자였던 John Hyrcanus는 요단강 동편과 이두매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모두 강제로 할례를 받게 했다. 힐카누스의 뒤를 이은 통치자였던 아리스토불루스도 북 갈릴리를 점령하고 그들 모두 강제로 할례를 받게 했다. AD 66-70년 사이에 있었던 유대 로마 전쟁 중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통제하고 있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할례를 받도록 했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할례를 받게 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들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될까 염려하여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강제로 할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파 출신 유대인 기독교인들도 유대인과 교류하려면 무조건 할례 받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들 역시 할례 받지 않고 율법도 안지키는 자들과 접촉해서 자신들이 율법적으로 부정하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여 하는 말이지 그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시 대다수의 유대인들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은 믿지 않는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아니라 완전히 믿은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부분의 중심인 3절에 나오는 페니키아와 사마리아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처럼 기뻐했어야 옳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바깥쪽에서 감싸고 있는 1절과 5절에 나오는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 신자들은 분명히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고집일 뿐이다.

할례와 율법은 유대인들이 이방민족들과 자신들의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할례와 율법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앙을 지켜왔던 것이다. 바리새파에 속했던 신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고넬료의 집에 모였던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는 놀라기만 했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주류였던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뒤섞인다고 하니 그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경계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그리스도인들의경계선은그러한눈에보이는거룩이아니라우리주님께서가르쳐주신원수까지도사랑하는사랑이다. 요한복음 13:34-35절에서도그렇게예수께서가르쳐주신사랑으로서로사랑하면모든사람이너희가내제자인줄안다고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으로 불신자들과 구별하는 경계선이 아니다. 그 말씀이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때 죽기보다 싫더라도 하나님 뜻이기에 순종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불신자들과 구별하는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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