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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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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14:27-28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교회에 보고한 두 사람

2025. 2. 12.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4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4:27-28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를 소집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일을 보고하고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은 오던 길로 되돌아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처음 출발한 안디옥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은 두 사도가 현재 이룬 그 사역을 하나님께 맡겼던 곳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를 소집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일을 보고하고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27절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도착한 뒤 교회 회중들을 불러 모았다. 이는 13:2-3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13:2-3절에서는 성령께서 두 사람에게 맡길 일이 있다고 하셨기에 두 사람을 안수하여 파송했다. 13:4-14:26절은 두 사람이 성령께서 맡기신 일을 모두 감당했다는 내용이다. 이제 두 사람은 성령께서 맡기신 사역을 마치고 처음 파송을 받은 안디옥 교회로 돌아온 것이다.

바울 일행은 두가지를 보고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신 모든 일을 선포했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했던 사역을 자신들이 했다고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한다.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장소에 함께 있었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생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면서 자신들을 사용하셔서 하신 일이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을 보고했다. 사도행전에서 문이라는 말이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곳은 여기 뿐이다.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는 말은 그동안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문이 열려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믿음의 문이 열렸다는 말이 나타내는 그림은 뭔가 새로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가진 복음이 이방세계에 미친다는 뜻이다.

믿음의 문이라는 표현은 믿음을 목적어로 해석하여 믿음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믿음을 주어로 해석하여 믿음이 들어가는 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도행전 11:18절에서 "이방 사람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다"는 표현이 있기에 이는 이방인들을 위해 믿음의 문이 열리고 믿음이 이방인들에게 갈 수 있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믿음의 문이 처음 열리고 믿음이 이방 사람들에게 들어가 이방 사람도 회개를 하고 복음을 믿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는 별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11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심각한 문제를 삼고 정죄하려 했던 것이다. 베드로가 분명한 증거를 들어 증언하자 11:18절에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고 마지못해 인정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들을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완전히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보고를 한 것은 앞으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보고할 준비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15:9절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분명히 함께한 증거를 베드로도 증언했고 바울도 증언했지만 이러한 논쟁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고 계속된다.

28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27절과 연결이 된다. 한글 번역들은 대부분 생략했고 영어 번역들도 "and"로 바꾸어 번역해서 원어의 의미를 지워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가 왜 여기서 "그러나" 라는 단어를 썼는지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나온 바울과 바나바의 열정을 보면 바로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 바울은 돌에 맞아 죽게 된 상황에서도 즉시 일어나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안디옥 교회에 보고를 마친 뒤 즉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야 맞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지기에 28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예상과는 반대로 안디옥 교회에서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말은 본래 한 곳을 집중적으로 문질러 댄다는 뜻이다. 마치 놋그릇을 닦기 위해 지푸라기에 기와장 깬 가루를 발라 문지르는 것과도 같은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마치 한곳만 집중적으로 문질러 대는 것처럼 그 근처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같은 말이 14:3절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14:3절은 과거에 한번 문질러댔다는 뜻이지만 28절에서는 과거부터 일정시점까지 계속해서 문질러댔다는 뜻이다. 전에는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도 즉시 일어나 복음 전하러 떠났는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오랫동안 안디옥 교회에서 오랫동안 계속해서 문질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단순히 열심히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성령님과 늘 함께 동행하면서 성령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파한 것이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죽을 길도 간 것이고 성령님께서 이제 멈추고 한곳에서만 집중적으로 문질러대라고 하면 멈춘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교회 성장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성령님께서 가라 하시면 어떠한 고난도 견디며 가서 담대히 진리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멈추고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양육하라고 하셨기에 안디옥 교회에서 오래 머문 것이다.

그렇게 성령님의 뜻에 따라 사역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역의 열매들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도여행에서도 많은 제자들을 열매로 얻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안된다. 우리의 목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때로는 밖으로 나가 전도하고 때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하며 가르치고 삶을 나누는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사역의 열매들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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