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14:21-23

Dawn Word

사도행전 14:21-23

교회를 굳건히 하려고 되돌아간 바울과 바나바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2. 10.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4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4:21-23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복음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훈련시킨 뒤 자신들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있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돌아가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고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장로들을 세워 주께 맡겼다.

이전 말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로 쳤고 완전히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냈고 제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바울은 일어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더베로 떠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있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가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하고 장로들을 임명해 일을 맡기는 장면이다.

19절에 보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사람들이 루스드라에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끌어내 버렸다고 했다.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싸고 눈물로 기도했을 때 바울은 일어나서 다음날 더베로 갔다고 했다. 21절은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들을 얻었다고 했다. 제자를 얻었다는 말은 사도행전에서는 여기만 나오고 마태복음 28:19절에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 삼으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단어 자체의 의미는 복음 전한다는 말은 선포한다는 뜻이고 제자 삼는다는 말은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문맥에서 제자삼는다는 말은 복음 전하는 단계를 지나서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과정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어서 이상한 말이 나온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반대도 없었고 복음 전하여 많은 제자들을 들 수 있었는데도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세 도시 모두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더베에서 많은 제자들을 얻었다면 계속 더 나가면서 복음을 전했어야 옳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죽을지도 모르는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어째서 바울 일행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되돌아갔을까? 분명히 계속해서 갈라디아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더구나 더베에서 핍박을 받았다는 말도 없기에 훨씬 안전한 곳이었다. 더베에서 조금 더 가면 Goksu River Valley를 통해 해변길로 내려가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 갈 수 있었다. 거기서 안디옥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선교 사역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 길로 진행하여 고향을 거쳐 안디옥으로 가는 것이 훨씬 쉬운 길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죽이려 했던 자들이 있는 지나온 길로 되돌아갔다. 이미 한번 돌에 죽을 뻔 했기에 어쩌면 또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이유가 22-23절에 나온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제자 삼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누가가 전하는 초점도 바울이 고난을 받았다는 것에 있지 않다. 누가는 바울이 당한 고난에 관한 것을 위주로 하지 않고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장벽들을 부수고 모든 장애물들을 이겨낸 복음의 능력을 위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정확히 뒤따라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 일행이 되돌아 간 이유가 22절에 세가지로 나와있다. 첫째는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라고 권하려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말은 단순히 마음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굳세게 하라는 말은 건물을 짓는 그림이다. 돌을 기초 위에 놓는데 그 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놓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제자들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잘 놓여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라는 것이다.

둘째는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려는 것이다.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믿음 위에 계속 머물러 산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잘 놓여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살아야 교회가 튼튼하게 서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새로 믿은 신자들과 교회를 세워가고 튼튼하게 하는데 쓰이는 전문적인 용어들이다. 이는 바울을 죽이려고 돌로 친 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바울의 제자들도 핍박을 하고 믿음에서 떠나도록 흔들어 댈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말고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튼튼한 교회를 이루어 가라는 뜻이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된다고 권면하려는 것이다.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말에 담긴 의미는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는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자신들의 의식적인 선택에 때라 충족시키는 입학 요건이 아니다. 믿는 자들이 겪는 환난은 마치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일정한 조건들을 갖추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 것이다. 믿는 자들은 계속해서 환난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이는 돌에 맞아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난 바울이 한 말이기에 더욱 힘있게 들렸을 것이다. 디모데후서 3:11-12절에서도 이 지역에서 복음 전하다가 죽을 뻔한 일을 증거하면서 주께서 자신을 건져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라고 증거했다.

그러나 이 세가지만을 말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되돌아 온 것은 아니다. 23절에 보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선택하고 금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을 주님께 맡긴 것이다. 어떤 이는 장로 라는 말이 빌립보서 1:1절의 감독과 같은 용어라고 했다. 그러나 다수는 장로들이라는 말이 구약시대의 장로들에서 온 것이라며 구약시대의 전통을 따라 신약시대 지중해 연안의 회당에는 여러 명의 장로들이 있었던 것에서 온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서도 역시 장로들이라는 복수로 썼기에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회당의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유대인들이 원로들을 지도자로 세우고 그들의 조언을 듣던 것을 따른 것이지 후대의 감독을 세운 것처럼 지도자를 임명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들이 없을 때 사람들을 권면하고 바른 믿음으로 이끌어 줄 지도자들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초대 교회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웠었다.

교회 지도자들을 세운 것은 13:1-3 절과 같이 금식하며 기도한 뒤에 세웠다. 이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선교의 일을 맡긴 것과 같은 것이지 오늘날처럼 영구적인 직분으로 세우는 안수식은 아니다. 이렇게 금식하고 기도하며 장로들을 세운 뒤 그들을 주님께 맡겼다고 했다. 맡겼다는 말은 주님 옆에 세운다는 뜻이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도록 그들을 기도하며 세운 것이다. 바울은 이들을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로 세워서 주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고 교회를 잘 지켜 나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하기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만 목숨을 걸었던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고 양육하는 일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다.

사도행전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