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19-20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로 쳤고 완전히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냈고 제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바울은 일어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더베로 떠나갔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고 무리들 가운데 뛰어들어 자신들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자신들도 당신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며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이런 헛된 일을 멈추고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에게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인들이 자기들 방식대로 신을 섬기며 살도록 놔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우기와 건기를 주셔서 먹고 기뻐하게 함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돌에 맞고도 일어나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나는 장면이다.
19절에서도 바울과 바나바 만큼 믿음의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유대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 몰려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루스드라까지는 100마일이 넘는다. 오늘날은 100마일이면 차로 두시간도 안걸리는 거리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걸어서 가야 했고 게다가 험한 산맥을 넘으면서 며칠을 걸어야 하는 길이다. 이들이 이렇게 먼 거리를 떼를 지어 몰려오려면 하나님을 향한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안된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잘못된 믿음의 열심을 가지고 산을 넘고 들을 건너 100마일을 식식거리며 왔을 것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을 죽여 그 들불을 서둘러 끄려고 하는 것이다.13:58절에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여 내쫓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쫓아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극단적인 유대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울을 추격해서 이고니온까지 와보니 이미 이고니온 사람들 절반이 사도들에게 넘어간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고니온에서 바울을 죽이려던 사람들과 합류하여 루스드라까지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러 온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째서 바울만 돌로치고 바나바는 그냥 두었을까? 어떤 이는 바울이 공격을 받을 때 바나바는 분명히 그 자리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다른 이는 바울이 유명한 사람이었고 주로 복음을 선포한 사람이었기에 바울만 공격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주는 공개적이고 널리 알려진 행동을 했기 때문에 군중들이 알고 있는 얼굴이어서 자연스러운 표적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성모독죄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실제로 말하고 행동한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지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죽이지는 않는다.
이들은 무리를 설득하여 바울을 돌로 쳤다. 하나님을 모독한 자이기에 돌로 쳐 죽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뒤에 바울을 성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바울이 이 때 정신을 완전히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약간의 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육체적 고통보다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족들이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생각하고 버리고 갔다.
20절에는 두가지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먼저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다고 했다. 이 제자들은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한 결과 개종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왜 둘러서 있었을까? 어떤 이는 제자들이 둘러선 이유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9절 끝부분에서 죽은 줄 알았다는 말은 완전히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뜻이기에 그럴 수 없다. 유대인 대적자들은 바울이 완전히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미 그 자리를 떠난 것이다.
만약 살아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둘러서 있지 않고 즉시 옮겨서 치료받게 했을 것이다. 이들도 아마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둘러서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Stott는 이들은 분명히 그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Stott, BST, 233). 어쩌면 이들도 바울을 통해 보여주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셔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이들이 흘리는 눈물이 바울에게 뚝뚝 떨어져서 정신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깨어 나자 마자 눈을 뜨고 누운 채로 이들의 눈물을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때 바울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바울은 벌떡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돌로 쳐 죽인 사람들이 있는 성 안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바울이 무의식 상태였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것이며 어찌되었든 그가 그렇게 빨리 회복된 것은 기적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람이 벌떡 일어나 성 안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회복시켜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살아남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만약 부활이라면 누가는 그 내용을 더 자세히 기록했을 것이다.
두번째 놀라운 일은 이튿날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것이다. 루스드라에서 더베는 포장된 고속도로가 없다. 산기슭과 들판을 가로질러 갔을 것이다. 그 거리는 무려 63마일이나 된다. 죽이려고 치는 돌에 수도 없이 맞았을텐데 그 엄청난 상처투성이와 멍이 든 몸을 이끌고 그 먼 거리를 갔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돌에 맞은 바울이 하룻밤을 자고 나서 그 먼 길을 간 것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일어난 것만큼은 놀라운 기적이다.
우리가 핍박 가운데서도 원수를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핍박으로 인해 바울처럼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양육한 사람들에게 둘러 싸이게 하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우리 뺨에 떨어지게 하신다. 그들의 눈물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몸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의 마음도 회복시켜 주셔서 다시 복음을 전하러 길을 떠나게 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힘입어 담대히 복음 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