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14-18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고 무리들 가운데 뛰어들어 자신들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자신들도 당신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며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이런 헛된 일을 멈추고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에데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인들이 자기들 방식대로 신을 섬기며 살도록 놔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우기와 건기를 주셔서 먹고 기뻐하게 함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하는 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 하며 황소들와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신들으로 경배하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가 무리를 설득하여 자신들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면이다.
14절에는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이 나온다.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군중들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이 두 사람이 옷을 찢은 것에 대한 해석은 둘로 갈린다. 일부는 깊은 슬픔이나 분노로 해석한다. 깊은 슬픔이나 분노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대상이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옷을 찢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나 신성모독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신성모독이 행해진 것에 대한 슬픔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37:29절과 34절을 보면 신성모독이 아닌 극단적인 슬픔을 나타낼 때 옷을 찢었다. 또 여호수아 7:6절에 보면 최고로 낙심했을 때 옷을 찢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옷을 찢은 것을 무조건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럴 때는 문맥으로 판단해야 한다. 두 사도는 옷을 찢은 뒤 바로 이어서 무리들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이처럼 무리들 가운데로 뛰어든 것은 그러한 예배 행위를 멈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바울 일행을 예배하려는 무리들 가운데로 뛰어 든 것은 말로 저들의 행동이 즉시 저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중 가운데로 뛰어 들어 몸짓과 손짓으로 막은 것이다. 또 15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남자들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며 자신들도 당신들과 똑 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이러한 문맥으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은 것은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려 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사도행전 12:22절에서 군중들이 헤롯을 향해 신의 소리라고 했다. 그 때 헤롯은 그러한 찬양을 그대로 받았다.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한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이러한 잘못된 찬양과 경배에 대해 옷을 찢으며 두려움을 드러냈고 온 몸을 던져서 저들의 잘못된 행동을 막았다. 그러면서 바울은 15절 뒷부분에서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그들이 잘 알고 있던 구약성경을 먼저 말하고 공감을 얻은 뒤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고 전했었다. 그러나 루스드라의 이방인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저들이 헛된 신을 경배하는 장면을 교육의 기회로 삼아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한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인지 이방인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한다. 바울은 15절 끝부분에서 첫째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16절에서는 둘째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나간 세대들에게는 모든 이방인들이 각자 자기들의 길로 가도록 두셨다는 것이다. 바른 길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인데 자기들의 길이란 잘못된 우상숭배의 길로 가도록 두셨다는 것이다.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하지 않고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았어도 저절로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는 뜻이다. 어떻게 계시하셨는가?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셨다고 말한다. 어떤 선인가 하면 하늘에서 비를 주셨다는 것이다. 비를 주셨다는 것은 늦은 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비가 내리는 우기를 뜻한다. 또 그분은 열매 맺는 계절도 주셨다는 것이다. 열매 맺는 계절이란 곡식이 익어갈 때 비가 오지 않는 건기를 뜻한다.
그 다음에 비교되는 짝은 열매와 기쁨이다. 이 두가지는 비가 내리는 계절과 열매맺는 계절을 주신 결과이다. 열매들과 기쁨들로 그 마음을 가득히 채워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인 루스드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이러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기와 건기를 주관하셔서 먹이시는 분은 저절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헛된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을 당장 멈추라는 뜻이다.
18절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말해서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는 제사를 겨우 말렸다는 것이다. 겨우 라는 말은 아주 어렵게 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 일행이 말해도 루스드라 사람들은 듣지 않고 계속 신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정말 아주 어렵게 겨우 설득해서 자신들을 신으로 경배하는 것을 겨우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행함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며 누리며 산다면 헤롯처럼 하나님 행세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높이고 섬기려는 행위를 바울과 바나바처럼 옷을 찢고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섬기는 일꾼으로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하고 돌에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며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