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11-13 바울과 바나바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걷게 하는 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 하며 황소들와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신들으로 경배하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이 유대인들을 피해 루스드라로 갔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집중해서 듣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네 발로 똑바로 서라고 했을 때 벌떡 일어나 계속해서 걸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를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 하며 신으로 경배하려고 했다.
11-13절은 바울이 행한 기적을 보고 루스드라 사람들이 놀라서 신으로 알고 경배하려는 장면이다. 11절에서 이들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라고 소리쳤다. 12절은 그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을 헤르메스 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아버지이고 헤르메스는 그 아들이다. 헤르메스는 아버지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따라서 바나바는 아버지 신이고 바울은 아버지 신의 뜻을 대신 전하는 공식 대변인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이 모든 말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스드라 사람들은 어째서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생각했을까? 놀라운 기적을 행했기 때문일까? 이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때문이다. 당시보다 약 50년전 라틴 시인 오비디우스가 그의 작품에서 그 지방의 오랜 전설을 소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하여 브리지아 언덕의 나라를 방문했다. 하룻밤 묵기를 원해서 방문했지만 천번 정도 박대를 당한다. 마침내 허름한 집에 나이든 노인 부부의 집에 묶게 된다. 이 신들은 그 집을 신전으로 만들었고 자신들을 박대한 집들은 모두 파멸시켰다(Ovid, Metamophoses 8:620-724).
따라서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와 헤르메스 라는 그리스 신으로 보고 환대한 것이다. 만약 잘못 대접하면 Ovid의 글에 나온 것처럼 자신들이 파멸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신들을 잘 모셔서 벌을 피하고 상을 받으려는 것이다.
어째서 바나바를 제우스로 보고 바울을 헤르메스로 보았을까? 어떤이는 외모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며 바나바가 키가 더 크고 강하고 품위있는 외모를 했다면 그들은 바나바가 제우스이고 바울은 그의 뜻을 전달하는 대변인으로 결론지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항상 본문의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12절을 보면 바울이 바울 일행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로 여긴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제우스는 그리스 신들 중에 우두머리 신이고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대변인으로 제우스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신이다. 바울이 바울 일행의 대변인 역할을 했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바울이 행한 기적은 제우스와 헤르메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는 누가복음 5:17-26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치유 사건과 유사하다. 사도행전 9:32-35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치유 사건과도 유사하다. 모두가 다 같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5:17에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라는 말이 나온다. 중풍병자를 일으킨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행한 기적도 역시 가르침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다른 기적들도 모두 제자들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때까지도 루스드라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루스드라 방언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절에서 도시의 밖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가지고 문 앞에 와서 무리들과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 당시 루스드라에는 성벽이 없었기에 여기서 문은 성문이 아니라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신전 경내의 문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모습을 보고서야 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린 것이다. 어쩌면 황소들과 화관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았을지도 모른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과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나 바울이 행한 기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뒤 그 말씀을 성령께서 증명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병이 낫는 것만 보고 따라다녔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루스드라의 사람들처럼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 보다 자신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만 본다면 결국 루스드라 사람들과 똑같은 우상숭배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