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6-23 바울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그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있던 이스라엘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높이 들어 광야로 인도하셨고 반역하는 그 조상들을 참으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다윗을 일으키셔서 왕으로 세우셨고 다윗의 씨로부터 구원자를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라고 증거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 일행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배를 타고 버가로 건너갔을 때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험한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을 때 회당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회당장들의 요청을 받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인도하신 일을 출애굽 때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자손 중에 구주를 보낼 것을 증거하며 그 구주가 바로 예수라고 증거하는 내용이다.
16절에서 바울은 일어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바울이 일어난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회당장이 바울을 회당 설교자로 초청하자 사람들은 바울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웅성거렸을 것이다. 그 때 바울이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손짓이나 손을 흔들었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아래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손을 아래로 흔들며 조용히 하라는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손을 흔들었다는 말이 회당의 설교자라기 보다는 그리스 연설가의 손짓이다. 바울이나 회당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그리스어에 익숙한 그리스-로마세계에 살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손을 아래로 흔들어 조용히 시킨 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이라고 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이방인들 중에 할례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다수가 유대인들이고 그 중에 일부가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을 부른 후에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고 권한다.
17-23절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간단히 들려 준 뒤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메시야라고 전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늘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으로 부터 시작해서 예수가 바로 다윗의 후손 중에 오시겠다고 한 메시야라고 전했다.
17절에서는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과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선택하심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서 나그네 생활을 하던 그 조상들을 높이셨다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 땅에서 종으로 살던 그 백성들을 기적을 보여 주셔서 높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높이 드신 권능의 팔로 그 백성을 인도하여내셨다는 것이다.
1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40년간 참으셨다고 했다. 참으셨다는 말은 군인이 옷과 무기들을 몸에 지고 가는 그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에서 40년간 그 백성들 전체를 짐덩어리 지듯 한없이 참고 견디며 가셨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보병이 무거운 완전군장에 M60 기관포까지 짊어지고 사막길을 걷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그 조상들이 선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악한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참으시며 지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 조상들이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을 그렇게도 힘들게 참으시며 지고 가셨다는 뜻이다.
19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셔서 그 일곱 족속을 멸하신 후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주셨다고 했다. 20절은 그 후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는 사사들이 다스리던 기간이다. 21절은 마지막 사사 사무엘 때에 백성들은 왕을 달라 했기에 사울을 왕으로 세워 주셔서 40년간 다스리게 하셨다. 22절은 그 후에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고 했다. 여기서 다윗을 왕으로 세운다는 말은 다윗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일으킨다는 말은 30절에서 예수를 살리신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표현은 다윗의 자손 예수를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신다는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을 일으켰다는 말이 예수님을 일으키셨다는 말과 병행을 이루는 것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하시며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셨다. 이러한 표현 역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리라는 것도 암시한 말이다.
여기까지는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 모두가 다 잘 알고 공감하는 내용들이다. 23절은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씨로부터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자를 세우신다고 했다. 베드로도 사도행전 5:31절에서 구원자 라는 말을 썼다. 누가복음 2:11절에서 구주가 나셨다고 할 때도 역시 이 단어와 같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4:42절에서는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말을 직접 듣고 세상의 구주라고 할 때 구주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 구원자라는 말은 칠십인역 구약성서 시편 27:1절에서는 하나님을 묘사한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모두가 다 기다리는 구원자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그 구원자가 바로 예수라고 바울은 전한다. 바울은 모두가 다 공감하는 내용을 말한 뒤 다윗과 예수를 연결시킨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다윗과 같은 구세주가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