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15 바울 일행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배를 타고 버가로 건너갔을 때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험한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을 때 회당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회당장들의 요청을 받았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이라고도 불리우는 사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그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손이 네 위에 있어 한동안 눈이 멀 것이라고 하자 그대로 되었고 총독은 그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가르침에 경탄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버가로 건너간 뒤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 들어갔을 때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권면한 말 있으면 해 달라는 장면이다.
13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12절과 연결이 된다. 12절에서 바울이 전한 가르침에 총독이 경탄하여 깜짝 놀라는 장면과 연결이 된다. 로마제국의 원로원 의원이고 구레네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이 믿게 되고 바울 일행의 가르침에 깜짝 놀라고 있다면 거기서 더 머물면서 총독을 더 가르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바보를 떠나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갔다는 것이다. 역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사울이 바울로 바뀌고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보다 먼저 나온다. 이제 바울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바울 일행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서기오 바울을 뒤로하고 떠났다. 13절 뒷부분은 또 다시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그러나 성령님에 순종하지 않고 이탈하여 제 뜻에 따라 가는 사람이 생겼다는 뜻이다. 요한 마가는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돌아갔다는 말은 배반했다거나 고의적으로 버리고 떠나갔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15:58절에서는 자기들을 버리고 떠났다고 좀 더 분명하게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 것이다. 요한은 왜 떠났을까? 어떤 이들은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한 사건 이후 이제 일행은 선교의 방향을 이방인으로 잡은 것이 요한 마가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울 일행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갔고 바울은 어디에 가든지 늘 유대인의 회당을 찾거나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을 찾았기에 이런 주장은 가능성이 적다.
어떤 이는 요한 마가가 떠난 이유를 바나바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촌인 바나바 대신 바울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고 떠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향수병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다수는 산적이 많은 갈라디아 지방의 Taurus 산을 넘을 때 예상되는 위험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사역이 기대했던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15:37-39절을 보면 바나바가 요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려고 한 것을 계기로 바나바와 바울이 크게 다투고 갈라진 것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마가가 일행들을 버리고 떠난 것은 바울 일행의 사역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바울은 크게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13절 앞과 뒤가 서로 반대로 대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님의 뜻에 순종해서 밤빌리아의 버가로 갔지만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따르던 요한은 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14절에 보면 바울일행은 버가를 통과해서 북쪽으로 올라가 비시디아의 안디옥까지 갔다. 거리는 100마일 이 넘는 험한 산길이다. 마가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륙으로 깊이 험한 산을 넘어갔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서기오 바울의 가족이 사는 곳이고 서기오 바울이 편지를 써 주었기에 그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푸스의 기록을 보면 그곳에는 유대인들이 약 2000여명이 살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물론 서기오 바울이 편지를 써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문맥으로 보면 바울 일행은 분명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 전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다. 그곳에 가서도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가 앉았다. 42절에서는 회당에서 나갔다고 했기에 14-42절은 회당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15절은 회당에서 안식일에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백성을 권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권했다. 이는 바울과 바나바가 회중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다수는 회당장들이 이미 바나바와 바울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미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율법에 관해 잘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험하고 위험한 산맥을 넘어 복음을 전하러 간 바울과 바나바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요한 마가가 대조된다. 우리 역시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순종해야 하는 것은 누가복음 6:23절에 나온 것처럼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