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4-5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멀리 파송하셔서 두 사람이 키프로스 섬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요한 마가도 돕는 자로 계속 함께 했다는 내용이다.
이전 말씀에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님을 섬기고 금식하는 중에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떠나보냈다. 이어지는 말씀은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멀리 파송하셔서 두 사람이 키프로스 섬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요한 마가도 돕는 자로 계속 함께 했다는 내용이다.
4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3절과 연결이 된다. 3절에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자유롭게 가도록 풀어주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말은 없고 그들이라고만 되어있다. 2-3절에서 안수하여 세운 두 사람을 그들이라고 한 것이다. 새번역은 영어의 NLT를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한 것이다.
그들은 성령님께서 보내셨다고 했는데 원어의 의미는 밖으로 내보내졌다는 뜻이다. 내보내졌다는 말은 구약에서 주인이 종을 보내거나 왕이 사람을 보내는 경우에 주로 쓰였다. 사무엘상 20:20절에서는 화살을 쏜다고 할 때도 이 말을 썼다. 신약성경에서는 누가만이 두 번 쓴 말이다. 사도행전 17:10절에서 바울과 실라를 피신시킬 때 한 번 더 나온다. 따라서 성령님에 의해서 강제로 파송되는 것이고 성령께서 쏘는 화살처럼 멀리 보내진다는 뜻이다. 안디옥 교회 안에서만 사역했는데 이제 성령님께서 화살을 쏘듯 안디옥 교회 밖의 특정한 목적지로 내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간 곳은 실루기아이다. 실루기아는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16마일 떨어진 항구이다. 여기서 내려갔다는 말을 쓴 이유는 안디옥은 높은지대이고 실루기아는 해변에 있는 낮은 지대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5마일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오론테스 강의 입구가 안디옥에서 5마일 떨어졌다. 배가 강을 따라 5마일 떨어진 곳까지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 배를 타고 항해했다는 말은 멀리 라는 말과 항해한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가까운 근해를 항해한 것이 아니라 먼 바다를 건너갔다는 뜻이다. 키프로스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바나바도 바로 키프로스 출신이었다.
키프로스는 원로원 속주이다. 본래 속주의 총독은 600여명의 원로원에서 임명했다. 본래 원로원 의원들이 속주의 군단 지휘권도 독점했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시저가 이 체제를 파괴했다. 옥타비아누스가 공화정 복귀를 선언하자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주고 평화가 확립될 때까지 속주의 군사권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안정된 곳을 자신의 속주로 두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젊은 아우구스투스는 그러나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편입된지 오래된 안정된 지역은 모두 원로원 속주로 분류하고 최전방에 해당되는 곳을 황제속주로 지정한 것이다. 키프로스는 오래전부터 원로원 속주였고 안정된 지역이었기에 주둔한 로마 군대도 거의 없던 곳이다. 이곳은 로마로 항해할 때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다.
5절에서 두 사람이 탄 배는 살라미에 도착했다. 살라미는 키프로스의 동쪽에 있는 섬이고 본래 키프로스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이곳은 키프로스 섬에서 유대인들의 중심지였다.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여러 개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이곳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전했다는 말은 계속해서 전했다는 뜻이다. 유대인의 회당들 이곳 저곳을 다니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요한도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요한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모이던 집의 주인 마리아의 아들 요한 마가이다.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는 말도 역시 계속해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앞에서 계속해서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요한 마가는 계속해서 조수의 일을 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디모데후서 4:11절을 근거로 요한 마가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는 조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 마가는 단순히 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음식 준비해 주고 잔심부름 해주는 종과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원문은 두 사람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요한 마가는 계속해서 조수 노릇 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 말씀 선포할 때 돕는 일을 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기록된 서류를 간직하고 침례를 담당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이전 기록된 문서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목격자들이 살아있었기에 살아있는 목격자들이 직접 증언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마가는 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여 믿는 자가 생기면 개인적으로 데려가 자세히 복음을 설명해 주고 침례를 주는 일을 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1:2절에서 "말씀의 일꾼" 이라는 말에서 일꾼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선교사의 잔심부름을 돕는 실제적인 일과 복음의 일을 맡았을 것이지만 누가복음 1:2절처럼 말씀의 일꾼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는 이 말씀에서의 조수도 역시 누가복음 1:2절처럼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꾼이라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도행전 26:16절에서도 "종"으로 삼는다고 한 것도 역시 본 일과 장차 나타날 일에 대해 종과 증인을 삼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말씀을 전하는 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나바와 사울과 마가 이렇게 세 사람은 한 팀이 되어 선교활동을 한 것이다. 세사람은 또한 완벽한 증인의 숫자이기도 하다. 바나바와 사울이 주로 선포하는 일을 맡았을 것이고 요한 마가는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나 선교지에서도 선교사들과 목회자들만으로는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함께 하면서 돕는 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서 그 말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기면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각자의 간증과 삶으로 그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함께 협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