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2:3-5 야고보를 죽인 일을 유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본 헤롯 아그립바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았지만 유월절 명절 기간은 피하기 위해 옥에 가두어 두었고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굶주리던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중심되는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처형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야고보를 죽인 일을 유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본 그립바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았지만 유월절 명절 기간은 피하기 위해 옥에 가두어 두었다는 내용이다.
3절에서 헤롯 아그립바는 유대 사람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고 하였다 했다. 원어는 베드로도 추가로 잡으려고 했다는 뜻이다.어떤이는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적 표현이지만 누가가 히브리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고 칠십인역 구약성서를 흉내를 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칠십인역 구약성서에는 더한다는 동사에 부정사를 함께 사용한 표현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누가복음 20:11절에서 다른 종을 추가로 보냈다고 할 때도 똑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만약 누가가 칠십인역 구약성서를 보고 히브리 사람들의 표현방식을 흉내 냈다면 딱 두 번만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적다.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이나 모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을 듣고 누가는 기록할 때 그들의 히브리적 표현을 그대로 그리스어로 살려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구전으로 한동안 전해지던 것을 누가가 나중에 기록했다는 증거이다.
스데반의 죽음으로도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헤롯 아그립바가 야고보 사도까지 죽이자 유대인들은 기뻐하며 헤롯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에 헤롯 아그립바는 하나님의 구원자의 대리인을 죽여 유대민족을 기쁘게 하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또 많은 군중들이 북적이던 때는 비뚤어진 정치가에게는 완벽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참신하긴 하지만 원어의 구조와 문맥에 맞지 않는다. .
원어에서는 "그러나 그 때는 무교절의 날들이었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러나 접속사는 베드로도 죽이려는 헤롯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 문제는 바로 무교절이다. 무교절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을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유월절 음식을 먹는 것은 닛산월 14일이고 그 뒤 칠일동안 무교병을 먹다가 닛산월 21일에 끝난다. 마가복음 14:2절에도 같은 문제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것을 꺼리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더구나 4절 끝부분에서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 처형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4절을 보면 헤롯 아그립바는 베드로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으로 짠 경비병 네 패에게 맡겨서 지키게 했다고 했다. 이러한 절차는 로마 군대의 절차를 따른 것이며 헤롯은 그의 통치기간동안 로마 군대에 의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 앞에 그를 끌어낼 속셈이었다. 끌어 낸다는 말은 공개처형이 되도록 유대인들의 종교 재판에 넘긴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베드로를 신성모독죄로 몰아 돌로 쳐 죽일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헤롯 아그립바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다.
5절은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는 즉시 처형되지 않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5절은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구조로 대조가 되는 절이다. 한편으로는 베드로는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간절한 기도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졌다. 이 기도는 며칠동안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간절하다는 말은 잡으려고 안간 힘을 다해 손을 뻗는다는 말에서 온 말이다. 이는 누가복음 22:44절에 나오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에서 간절히라는 말과 같은 말에서 온 말이다. 이는 예수님을 닮은 기도이다. 땀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간절히 하는 기도이다. 사도행전에서 교회는 그렇게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당시 교회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베드로가 풀려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 15절을 보면 베드로가 풀려날 것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베드로가 탈출할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15절을 보면 당시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탈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판결이 좋게 나거나 비교적 가벼운 종류의 벌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풀려 나지도 못할 것이고 탈출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믿으면서 벌을 좀 가볍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을까? 예수님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온 맘 다해 기도했을까? 답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도 누가복음 22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22:42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도 자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분명히 아셨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그 두려움 때문에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간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시 교회 성도들도 베드로를 살려 달라는 기도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가 죽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베드로를 살려달라고만 기도했다면 야고보 사도 때도 그렇게 기도했을 것인데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은 것이 된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야고보의 때에는 기도가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응답되지 못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더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분명히 수님을 닮은 기도를 했을 것이다. 야고보 때에도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했고 베드로의 때에도 같은 기도를 했을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여 우리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