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18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고도 즉시 인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마음 속으로 논쟁을 하다가 마침내 이방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도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고 베드로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성령도 내리셨기에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고 거역할 수 없다고 예루살렘의 형제들에게 증거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자기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잠잠하였다. 잠잠하였다는 말은 누가복음 14:3절에도 나온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라고 물었을 때 4절에서 그들은 잠잠하였다고 했다. 생각은 동의하기 싫은데 답은 너무나도 분명하여 할 말이 없었다는 뜻이다. 베드로 앞에 있던 예루살렘의 형제들도 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증거가 너무나도 분명하여 할 말을 잃고 잠잠했던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땅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과 같은 생각이었고 많은 고민과 논란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형제들이 베드로의 말에 단번에 수긍한 것이 아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증거가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잠시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음 속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아닐 것이라고 반대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예수를 죽이려 했다. 자기들 생각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같은 상황에서 분명히 달랐다. 생각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증거가 있기에 즉시 자신들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과 성령님의 생각에 순종하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형제들은 평생을 간직해온 신념을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증거를 보고 자신들의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고백한 말이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라는 말이다.
회개라는 말의 본래 문자적인 뜻은 "생각한 후" 라는 뜻이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한 후에 작정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생각한 후에 믿기로 결정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성도들 만이 이를 인정했을 것이다. 15장에 보면 이에 대해 심각한 논쟁이 다시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길이 아예 없다고 믿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방인들이 할례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 자신들과 똑같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유대인이란 혈통이 아니라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신앙 공동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인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논쟁의 초점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고 할례와 율법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15:1절에서도 역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당시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단지 믿음만으로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넬료와 그 가족들만 베드로의 말을 듣고 생각한 후 생명의 길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 베드로를 심문하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형제들도 역시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방식으로 믿음을 고집해 왔었다. 그러다가 그들과 베드로의 말을 듣고 한참 고민을 한 후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길로 돌아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예수님 말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그 명령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다. 자신들이 믿어 온 방식대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고쳐서 해석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이런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들에게 나가도록 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깨달은 후 제자들도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시지만 강제로 이끄시지는 않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에 맞게 고쳐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말씀 조차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돌이켜야 할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