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9-15a 공정한 재판과 무죄를 선고하는 재판이 우리에게서 멀리 등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등지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주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하며 말씀을 등불삼아 앞서 가는 사람이 되자. 그 빛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도록 인도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고 귀가 어두워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정함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행동 때문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이러한 말씀에 반응하여 백성들이 자신들의 영적 상태와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9절은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라는 말로 시작한다. 공정한 재판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는 것이다. 또 "공의" 라는 말은 죄수로 묶여 법정에 세워진 사람에게 무죄 선언하는 것이다.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그러한 무죄선언으로 자신들을 낚아 채서 구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며" 는 낮 12시 같은 밝음을 원하지만 완전히 캄캄한 어두움 뿐이라는 것이다. 또 "밝음을 바라나 암흑 속을 걸을 뿐이다" 한낮은 아니더라도 밝아오는 새벽만큼만이라도 밝아서 알아 볼 수 있고 길을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캄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인도해 주시고 통치하시길 원하지만 여전히 공평은 멀리 있고 공의가 낚아채서 구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10절은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담을 더듬고" 라는 말이 아예 "눈먼 사람처럼 더듬고 다닌다" 는 말과 대조된다. 앞을 못보는 사람은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하는 소경이고 눈먼 사람은 눈이 뽑혀서 아예 눈이 없는 사람이다. "대낮에도 우리가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라고 했는데 낮 12시에도 동트기 전 캄캄할 때를 걷는 것처럼 걸려서 넘어진다는 것이다. 신명기 28:29절에도 보면 "당신들은 마치 눈이 먼 사람이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처럼 대낮에도 더듬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밝은 길을 걸어야 하는데 소경과도 같이 더듬거리다가 걸려서 넘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몸이 건강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걸려 넘어져서 크게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더듬거리며 걸을 수 조차 없어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쓰려져 있는 상태에서 할 일은 11절에서 나온 것처럼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라고 했다. 곰처럼 슬피 운다는 말은 사냥꾼에게 잡혀 사슬에 매여있는 곰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는 모습이다. 이어서 비둘기처럼 슬피 운다는 말은 계속해서 울부짖다가 지쳐 소리조차 낼 수 없게 되어 비둘기처럼 작은 소리로 알아 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만 낸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에서 공평을 바라지만 공평이 없다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고 풀려나길 원하지만 공정한 재판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9절에서 공의로 낚아채주길 원한다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길 바라지만 구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그래서 12절은 "주님 주님께 지은 우리 죄가 매우 많습니다" 라고 했다. 죄는 법정에서 증인들에 의해 입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발합니다" 라고 했다. 원어는 우리의 죄가 우리를 유죄라고 증언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은 죄를 발뺌할 수 없으며" 라는 말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난 것이다. 또 "우리의 죄를 우리가 잘 압니다" 라고 했다. 여기서 죄는 자신들이 알면서 지은 죄들이다. 자신들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아니라고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이다.
13절은 "우리가 죄를 짓고 부정하였습니다" 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 반역을 하고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거부하고서는 하나님을 따르던 길에서 돌아서 등을 돌리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그냥 물러간 것이 아니고 "포악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하면서" 물러갔다는 것이다. 포악한 말과 거역하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또 " 거짓말을 품었으며 실제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는 말은 말로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것이다.하나님을 거부하고 등을 돌린 것보다 한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14절은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라고 했는데 공정한 재판이 뒤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또 "공의가 멀어졌으며" 무죄를 선언하는 재판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졌다는 것이다. 14절의 공평은 9절에서 멀리있던 것이고 정의는 9절에서 "공의" 와 같은 말이다. 9절에서는 공의가 낚아채지 못한다
했는데 이번에는 그 공의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는 진실이 광장의 땅바닥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 "정직이 발을 붙이지 못하니" 라는 말은 정직이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이 뒤로 돌아섰고 무죄를 선언하는 재판이 아예 멀리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성실과 진실도 아예 없어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15절은 그래서 "성실이 사라지니" 는 진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에서 떠난 자가 오히려 약탈을 당합니다" 라고 했다.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처럼 소경이고 눈이 뽑힌 사람들과도 같다. 더듬거리다가 계속 걸려 넘어져 아예 죽은 사람처럼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처음에는 곰처럼 울부짖겠지만 나중에는 지쳐서 비둘기처럼 작은 소리로 울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삿대질을 하고 등을 돌리고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재판과 무죄를 선언하는 재판도 등을 돌리고 멀리 있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이다.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멀리 떨어져 살기에 하나님 말씀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받지도 못하고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나지도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죄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는 것은 하나님이 등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늘 빛 가운데서 동행하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