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1-8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고 귀가 어두워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정함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행동 때문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하: 평화를 이루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진정한 금식은 이웃을 섬기서 이웃을 영접하며 이웃을 위해 우리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생수의 강이 되게 하셔서 믿음의 공동체를 재건하게 하신다 라고 했다. 오늘 말씀은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롭게 살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58:13-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공동체를 재건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거냐?' 라고 질문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거 아니냐? 하나님이 귀가 먹은 거 아니냐?' 라고 물었을 것이다. 1-2절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1절은 "보라! 주님의 손이 짦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손이 짧다는 것은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힘이 부족해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또 가는 귀가 먹어서 못들으시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인가? 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먼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라고 했다. 죄악이라는 말은 잘못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친밀한 교제가 사라지고 높고 두꺼운 벽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못한 잘못된 행동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수 없다. 잘못된 행동은 거룩하다는 말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거룩의 반대로 부정하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벽 때문에 여호와의 손이 이스라엘에게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 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쌓은 것이다.
또 이어서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라고 했다. 이는 1절 뒷부분에서 귀가 어두운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해명이다. 죄악이라는 말과는 달리 죄라는 말은 사람이나 하나님께 적대시하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스스로 부정한 행위를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하게 우상숭배하면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등을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얼굴을 돌려서 말을 안들으시는 것이다.
3-8절은 어째서 그렇게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벽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먼저 3절은 손과 손가락이 입술과 혀와 짝을 이루며 대조된다. 손보다 손이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이고 입술보다 혀가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말을 하게 한다. 먼저 남을 해친 피묻은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때문이다. 또 부정한 일을 한 그 손가락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때문이다. 또 입술로 거짓말을 하고 또 그 안쪽에 있는 혀로 더 정교하고 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1-2절의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귀가 3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과 연결되는 것이다.
4절은 새번역이나 개역 모두 억울하다고 소송하는 것과 재판관이 판결하는 것이 짝을 이루는 것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에서 "공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라는 말은 "공의로 부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라는 뜻이다. 부른다는 말은 재판을 신청하여 사람들을 소집하는 모습이다. 공정하게 재판을 소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진실되게 재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라는 말은 "재판정에서 정직하게 간청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는 뜻이다. 재판이 소집되자 실제 재판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간청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거짓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4절은 재판을 소집하는 과정과 실제 재판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4절 뒷부분은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말하며" 라고 했다. 정직하다는 말은 견고한 형태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정직하게 간청하는 사람은 분명한 형태를 가진 사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헛된 것이라는 말은 정직과는 반대로 형태를 가진 사실이 없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이 형태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거짓을 말한다는 말은 공의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거짓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을 "해로운 생각을 품고서 죄를 짓는다" 라고 했다. 원어는 "악행을 임신하고 죄악을 분만한다" 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임신한 악한 생각과 실제로 드러나게 분만한 죄와 차이를 두지 않았다.
5절은 이들이 독사의 알을 품는 것과 거미줄을 짜는 것이 대조된다. 독사의 알을 부화시키고 거미줄을 짠다는 것이다. 둘 다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죽게 하려고 독사를 부화시켰고 거미줄을 짠 것이다. 그들의 알은 이미 독사의 형태를 다 갖추고 있고 아직 껍질만 깨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그들의 알을 먹는 사람은 독사에게 혀를 물려 죽는 것이고 그들의 알을 밟으면 독사가 나오게 되어 발이 물려 죽게 되는 것이다. 혀는 말과 연결되고 발은 행함과 연결된다.
6절은 그들의 거미줄로 짠 것은 옷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것으로는 아무도 몸을 덮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침 이슬에 젖어있는 거미줄을 보면 견고한 형태가 있는 천처럼 보인다. 그러나 옷으로 걸치려고 만지기만 해도 전체가 다 무너져 버린다. 그들이 짠 계획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만져보면 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거미줄 옷의 비유로 말을 한 뒤 그 실제 내용을 설명한 것이 "그들이 저지르는 일이란 죄악을 저지르는 것 뿐이며" 이다. 일이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행동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죄악이란 2절의 죄악과 같은 말로 잘못된 행동이다. 또 이어서 "그들의 손에는 폭행만 있다" 라고 했다. 폭행이라는 말은 2절의 하나님과 사람을 대적한다는 뜻의 죄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 밖의 모든 행동들은 남을 대적하여 남을 해치는 폭행뿐이라는 것이다.
7절은 이제 손에서 발로 넘어간다. "그들의 발은 나쁜 일을 하는데 빠르고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신속하다" 나쁜 일을 하는데는 달리고 피를 흘리는 일에는 아주 날쌔다는 뜻이다. "그들의 생각이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이다. 죄악이란 2절과 6절의 죄악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남을 대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그들이 가는 길에는 황폐와 파멸이 있을 뿐이다" 이다. 원어는 "황폐와 파멸이 그들의 고속도로에 있다" 라는 것이다. 황폐와 파멸이란 2절의 죄라는 말과 6절의 폭행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이웃을 대적하는 것이고 폭행이란 행동으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7절의 황폐와 파멸은 그 드러낸 결과이다.
8절은 "그들은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평이 없다" 라고 했다. 안전한 길이란 평화의 길이다. 앞에서 대적하고 싸우는 죄의 고속도로와 반대말이다.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길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평이 없다" 라는 말은 2절과 6절의 죄악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잘못된 행동의 반대말이 공평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도 죄를 짓고 또 개인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길을 굽게 만드니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이 없다" 라고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리로 똑바로 나가도록 길을 만들어야 할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길을 구부려놓고 샛길로 새서 엉뚱한 곳으로 빠져 멸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안전이 없다라고 했는데 원어는 평화가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웃들과도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 전체를 지배하는 단어는 2절의 "죄악" 이라는 말과 "죄" 라는 말이다.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죄악과 하나님과 이웃을 대적하고 해치는 죄를 여러가지 말로 설명한 것이다. 죄악은 부정하게 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또 죄는 하나님을 욕하고 맞서 싸우고 등을 돌리고 돌아서게 하고 이웃들과도 그렇게 싸우고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악보다 죄가 심각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셨고 부활하여서 하나님 우편에 오르셔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셨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더러운 죄악 때문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내 욕심대로 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응답 받는 기도를 드리는 길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 사랑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독사의 알과 같은 탐욕을 품고 헛된 인생의 거미줄을 짜면서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면 안된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계획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