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6-14 진정한 금식은 이웃을 섬기서 이웃을 영접하며 이웃을 위해 우리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생수의 강이 되게 하셔서 믿음의 공동체를 재건하게 하신다.
하: 진정한 금식을 원하시는 하나님
나: 나의 경건을 드러내기 보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빛과 생명의 물을 제공하는 자가 되도록 하자.
이전 말씀은 거짓 경건과 잘못된 금식을 버리고 진정한 경건을 행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온 힘 다해 외치라고 했다. 이제 진정한 금식과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진정한 금식은 자기를 낮추며 이웃을 섬기는 것이고 진정한 예배란 그렇게 낮춘 마음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6절은 원어에서 "이런 것이 내가 선택한 금식이 아니냐?"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어 나열한 목록들을 보면 금식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없다. 금식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금식을 통해서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고 결국 영적인 교만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 결국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낮게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식은 아무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금식 대신에 진짜 자신을 낮추는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하신 것이다.
진짜 금식은 먼저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라 했다. 악한 자들에게 부당한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갇힌 자들을 풀어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악한 자들을 찾아가 엎드려야 하고 그들에게 재물이나 곡식등을 제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이 먹고 입을 것이 없어질 것이니 자동으로 금식하게 될 것이다.
부당한 결박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멍에는 영원한 노예의 상징이다. 노예로 매여있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을 매어 놓은 소의 고빼 줄을 풀어주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압제받는 사람은 소에게 무거운 짐을 잔뜩 올려놓은 그림이다. 노예로 매여있을 뿐 아니라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고통스럽게 일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가게 하라는 것이다. 또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은 다시는 노예로 삼을 수 없도록 멍에 자체를 없애버리라는 것이다.
7절에서도 진짜 금식하는 훈련이 계속 이어진다.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은 노예살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이 굶주려야 하는 것이다. 역시 자동으로 금식하게 되는 것이다. 또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했다. 이번에는 노숙자를 집 안으로 맞아들여 함께 먹고 살라는 것이다. 먹을 것만 한두번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누어 먹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금식을 해야 할 것이다.
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 은 자기 옷을 벗어서 입혀주는 모습이다. 겉옷을 벗어주고 자신은 추위에 떨며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의 옷은 음식보다 훨씬 더 비싼 것이다. 얼마나 비싸면 죽은 시체에서 옷을 벗겨가겠는가? 음식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큰 헌신이 옷을 주는 것이다.
또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했다. 헐벗은 사람은 그냥 옷을 벗어주면 끝이지만 가까운 친척이 그렇게 헐벗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헐벗은 사람을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가까운 친적은 계속해서 입혀주고 먹여주며 보살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싫어 숨어버리고 마는데 숨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계속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노숙자는 형편이 나아지면 내보낼 수 있지만 친척은 그럴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8절은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긴 결과를 말한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금식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 결과는 이사야 5:20절을 보면 어두움이고 1:5절을 보면 골병이 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새벽햇살이 우리에게 비출 것이고 상처가 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벽햇살같이 우리에게 은혜를 비추어 주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상처도 치료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남을 돌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고 돌봐주시는 것이다.
8절 뒷부분은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호위할 것이다" 라고 했다. 출애굽기 13:21-22절에 보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인도해 주셨다고 했다. 또 출애굽기 14:19-20절을 보면 홍해가 갈라지자 앞서가던 구름기둥이 뒤로가서 애굽 군대를 막아섰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는 선발대(vanguard)가 되시고 뒤에서 보호하시는 후발대(rearguard)가 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앞에서 인도하시고 뒤에서 보호해 주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9절 앞부분은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 앞에서는 군대의 그림언어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묘사한 것인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때로는 앞서 인도하시고 때로는 뒤에 따라 오시는 분께서는 마치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와도 같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 하고 부르기만 하면 뒤에 따라 오시던 하나님께서 즉시 대답하신다는 것이다. 또 "네게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내가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울면서 도움을 청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며 즉시 달려오신다는 것이다.
9절 뒷부분은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버린다면" 이라고 했다. 폭력이란 "가리키는 손가락" 이란 뜻이다. 폭언이란 악한 말을 하는 것이다. 무거운 멍에를 얹어주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손가락질해서 때리라고 시키고 또 직접 욕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다 버리는 것은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권위로 다스리지 않고 낮아져야 하는 것이다.
10절은 앞에서 말한 것들을 없애버린 뒤 해야 할 일들이다.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쏟으며" 라는 말은 굶주린 사람에게 영혼까지 포함한 너 자신을 쏟아 부으면 이라는 뜻이다. 마치 제물의 피를 제단에 모두 다 쏟아 붓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빵이나 옷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신의 영혼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또 "불쌍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면" 이라는 말은 고통 받는 자의 소원을 만족시켜 준다는 뜻이다.
맛소라 본문에서는 금식을 영혼이 고통받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다 쏟아 붓는 것과 고통 받는 자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자신의 모든 영혼을 다 쏟아 부을만큼 그렇게 다 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금식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대신 고통을 받고 우리가 대신 압제를 당하고 우리가 대신 매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이것은 그렇게 진정한 금식으로 자신을 낮추고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빛이 나타나서 점점 밝아지다가 대낮처럼 되는 그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11절은 "주님께서 너를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라고 했다. 빛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출애굽 때 광야 메마른 곳에서도 물과 음식으로 배불리 먹이신 일을 배경으로 설명한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뼈마디가 다 흔들리고 아픈 법이다. 고통받는 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으면서 대신 고통을 당하면 뼈마디가 다 흔들리고 아픈 법이다. 그런 때에 뼈마디의 고통을 없애주시고 새로운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11절 뒷부분은 "너는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계속해서 물을 댄 동산은 온갖 나무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또 끊어지지 않는 샘은 그러한 동산에 계속해서 물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요한복음 7:38절에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 하셨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계셔서 우리 자신을 물댄 동산처럼 충만하게 채우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흘려 보내는 생수의 강이 된다는 것이다.
12절은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읻" 라고 했다. 이제 폐허가 된 공동체를 재건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섬기면 그 공동체가 살아나고 많은 사람들이 생수의 강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들의 공동체는 다시 아름답게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참된 금식의 뜻이다.
우리도 우리가 금식하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 많이 배우고 가르치면 우리 자신을 남보다 높게 생각하고 영적인 교만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된다면 그러한 금식과 그러한 경건은 아무 쓸데 없는 것이고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진정한 금식은 나를 낮추며 불쌍한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뿐 아니라 그들을 맞아들여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앞에서 인도해 주시고 뒤에서 지켜주시며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물 댄 동산이 되고 생수의 강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도 2019년에는 이러한 진정한 금식을 해서 우리 교회를 살리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