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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9:40-42

Dawn Word

사도행전 9:40-42

과부들에게 큰 기쁨을 주신 예수님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4. 12. 14.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9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9:40-42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다비다를 살린 뒤 거룩한 자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 여자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소문은 이 과부들의 증언에 의해 온 욥바에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 욥바의 다비다 라는 여 제자가 병이 들어 죽자 제자들이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요청을 했고 베드로가 그곳에 가서 중풍병자 애니아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던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 준 옷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베드로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비다를 살리는 내용이다.

40절에서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을 다 내쫓았다. 이는 마치 누가복음 8:51절에서 예수께서 회당장의 딸을 살리실 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것과도 같다. 하지만 두가지 다른 점이 보인다. 첫번째 다른 점은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나중에 증언하게 하려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증인으로 곁에 남겨두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이미 증언하고 있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자신이 다비다를 살리는 일에 대해 증인은 필요 없었기에 다 내쫓은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아직도 일하고 계심을 보여준 것이다.

두번째 다른 점은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한 적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기서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자신이 주님 자신이 아닌 그의 낮은 종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기적을 행할 때 무릎을 꿇지 않으신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죽은 사람을 살린다면 사람들은 베드로를 주님처럼 여기고 섬기려 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모습은 열왕기하 4:33절에서 엘리야가 아이를 살리는 모습과도 같다. 아마도 베드로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기도가 끝난 뒤 몸을 시신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한 것은 "다비다야 일어나라" 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아람어로 이 말을 했을 것이기에 이는 "다비다 쿰" 이다. 이는 예수께서 "달리다 쿰" 하시며 소녀를 살리신 것과 한글자만 다른 말이다. 그러자 그 여자는 먼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면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41절에서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서 그 여자를 일으켰다. 그리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38절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했는데 41절에서는 성도들 즉 거룩한 자들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그렇다면 36절에서 다비다를 여제자로 부른 것은 다비다 역시 다른 제자들처럼 거룩한 여자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부들은 39절과 똑같이 41절에서도 과부들이라 불렀다. 그곳 믿음의 공동체는 예루살렘에서 도망한 유대인 기독교인들인 제자들과 그 지역에 사는 많은 과부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라는 말은 믿는 자들이고 과부들은 믿지 않는 자들로 보면 안된다. 예루살렘에서 온 제자들을 거룩한 자들로 부르고 그곳에서 제자들이 전도한 과부들은 따로 구분해서 부른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믿는 성도들이고 과부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베드로는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보여주었다는 말은 옆에 세워둔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살아난 다비다를 자기 곁에 세워두고 그들에게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열왕기상 17:23절에서 엘리야는 살아난 아이를 그 부모들에게 선물로 돌려주었다. 누가복음 7:15절에서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뒤에 과부인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베드로는 여기서 살아난 다비다를 과부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것은 예수께서 나인 성의 과부에게 아들을 선물로 준것과도 같이 욥바의 과부들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그러나 이 선물은 베드로가 준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베드로는 전달만 한 것이다. 따라서 다비다의 죽음으로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과부들이다. 이 기적은 아무 것도 의지할 곳이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중풍병자와 같은 과부들을 다시 살게 한 기적이다.

42절은 이 일이 온 욥바에 알려졌다고 했다. 그 소문이 욥바 전체에 완전히 쫙 깔렸다는 뜻이다. 이는 베드로가 직접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비다가 다니며 전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는 주로 기적을 체험한 과부들에 의해서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이 과부들은 살 희망이 없어졌다. 자신들을 돌보던 다비다가 죽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또 다시 헐벗고 굶주릴 수 밖에 없는 불쌍한 과부들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와서 기도함으로 다비다가 살아난 것이다. 이 때 제일 기뻐하던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난 다비다 자신이 아니라 바로 이 과부들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다비다가 죽어서 누워있는 동안 낙심하며 통곡하던 이들은 바로 다비다가 돌보던 과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비다가 살아나자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자신들이 체험한 기적을 말하며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고 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기쁨의 주인공은 다비다가 아니라 낙심하며 통곡하던 과부들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불쌍한 과부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고 했다. 35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중풍병자 애니아가 복음을 전해서 룻다와 그 인근지역 샤론 평야 전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과부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복음을 증거하여 수많은 욥바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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