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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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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9:36-39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과부들을 살리도록 보내신 성령님

2024. 12. 13.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9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9:36-39 욥바의 다비다 라는 여 제자가 병이 들어 죽자 제자들이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요청을 했고 베드로가 그곳에 가서 중풍병자 애니아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던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 준 옷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가 핍박으로 인해 흩어져 복음 전하던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격려하던 중에 중풍으로 누워있던 애니아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해 주니 그 주변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말씀은 욥바의 다비다 라는 여 제자가 병이 들어 죽자 제자들이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요청을 했고 베드로가 그곳에 가서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 준 옷을 보여주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다.

앞 부분에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남자 성도가 치료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36에는 선행을 많이 하던 여자 제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 제자는 욥바에 산다고 했다. 욥바는 룻다에서 멀지 않은 지중해 해변에 있던 도시이다. 룻다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사는 도시였지만 욥바는 분명한 그리스식 도시였고 이방 지역이었다. 이 도시는 40여년동안 유대인들이 통치를 했지만 AD 6년 이후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갔었다. 그래서 다수는 명백한 그리스 도시라며 베드로는 이방지역에 들어간 것이라 해석한다. 10:5절에서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직업을 가진 무두장이 시몬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도 유대인들 관점에서는 부정한 이방인들의 도시인 것은 틀림없다.

누가는 다비다를 여자 제자라고 했다. 여자들에게 제자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NLT는 여제자라는 호칭을 “a believer”로 고쳐서 번역했지만 다수의 직역하는 영어 번역들은 모두 “a disciple” 로 번역했다. 원어는 분명히 “여자 제자”이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설교할 때 흔히 “도르가 집사”로 부르지만 누가는 분명히 베드로나 다른 남자 제자들과 똑같이 여자 제자로 부르고 있다. 물론 누가가 사용하는 제자들이라는 단어는 열 두 사도가 아닌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다비다는 아람어로 영양(gazelle)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가 라고 했다. 도르가도 사슴종류를 뜻하는 말로 역시 영양(gazelle)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나 한국어로 의미가 통하게 번역한다면 사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그 곳 사람들에게는 사슴보다 영양이 흔했기에 사슴같이 크고 빛나는 맑은 눈을 가진 아기가 태어났을 때 영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1975년 송창식이 발표한 “꽃보다 귀한 여인” 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사슴을 닮아서 눈이 맑은 그 여자” 가 바로 도르가일 것이다.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선한 일과 구제사업이 같은 말인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착한 일이나 선한 일로 번역한 말은 본래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똑 같은 말일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착한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이 아니다. 바로 이어서 구제사업을 행했다는 말이 따로 나오기 때문이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하고 구제사업이란 이웃과의 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선한 일이란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중심에 계시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행한 여자라는 뜻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수도 없이 행한 사람일 것이다. 또 구제사업을 많이 했다는 말은 가난한 이웃 사람들에게 물질로 나누어 주었다는 뜻이다.

37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이 여자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이다. 그 때 즈음에 병이 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여인을 씻겨서 다락방에 두었다는 것이다. 다락방은 교회가 모였던 곳일 것이다. 씻긴 것은 이제 매장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시신을 공동체가 모이던 다락방에 두었다는 점이다. 이 여인은 욥바의 믿음의 공동체들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원수 같은 사람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물질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여인은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여제자였고 특별한 존재였기에 교회가 모이는 장소에 두었던 것이다.

38절에서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욥바는 룻다에서 12마일 떨어진 지중해 해변에 있던 도시였다. 가까운 룻다에 베드로가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낸 것이다. 베드로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루살렘에서 점점 더 멀리 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그리스화 되어있는 도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령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인도해 나가시는 것이다. 이는 베드로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욥바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셔서 부정한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로 가게 하신 것이다. 성령께서 제자들 둘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베드로는 부정한 도시 욥바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했다는 말은 단순히 빨리 와 달라는 뜻이 아니다. 지체한다는 말은 오기 싫어하며 몸을 움츠리고 꾸물거리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당시 욥바는 그리스화된 도시였기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와 달라는 말도 그러한 지역을 완전히 통과해서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와 달라는 뜻이다. 매우 중요한 일 때문에 공식적으로 요청하니 이방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속히 와 달라는 뜻이다.

39절도 역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렇게 오기를 꺼려하는 곳이지만 그러나" 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즉시 일어나서 데리러 온 두 사람과 함께 동행하여 그곳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말과 데리고 올라갔다는 말 사이에는 반드시 접속사가 있어야 하는데 생략되었다. 이렇게 접속사를 생략한 유명한 예는 "veni! vidi! vici!" 즉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이다. 빠른 속도로 긴박하게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 일종의 수사법이다. 이는 베드로가 도착하자 마자 사람들이 급히 그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미 죽었는데 왜 이렇게 서두를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은 죽은 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영혼이 떠나간다고 믿었기에 그렇게 서둘러 데리고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면서 다비다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다 내 보여주었다. 보여주었다는 말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이 과부들은 바로 36절에서 다비다가 착한 일과 구제사업으로 섬긴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 유대 사회는 남자 중심이었고 유산도 모두 남자들에게만 물려졌기에 과부들은 당시 사회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헐벗고 굶주리던 사람들에게 다비다는 먹을 것을 주고 옷도 스스로 만들어서 입혀 주었을 것이다. 많은 과부들이 입고 있던 속옷과 겉옷들이 모두 다비다가 만들어 주었다니 대단한 섬김이다.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드는 것은 정말 많은 돈과 많은 시간 노동이 필요한 일이기에 대단한 섬김이다. 이렇게 불쌍한 과부들은 이제 자신들을 돌보던 보호자를 잃어버린 셈이다. 따라서 불쌍한 것은 죽은 다비다가 아니라 다비다가 섬기던 과부들이다. 룻다에서 불쌍한 성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중풍병 환자인 남자였다. 그런데 욥바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성도들은 다비다가 섬기던 여자들인 것이다.

바로 앞에 나오는 중풍병자 애니아와 대조되는 사람으로 다비다로 보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애니아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사람들은 바로 과부였다. 그런 과부들을 돌보던 다비다가 죽은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애니아를 고치신 것이다. 이번에는 성령께서 여자들 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과부들을 고치도록 베드로를 욥바에 보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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