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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9:29-31

Dawn Word

사도행전 9:29-31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위로를 받고 성장해간 교회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4. 12. 11.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9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9:29-31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사울과 말하고 토론하다가 격해져서 죽이려고 하자 믿음의 형제들이 사울을 고향인 다소로 피신을 시켰고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 계속 전진하며 그 수가 늘어갔다.

이전 말씀에서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제자들과 함께 교제하려 했지만 제자들이 사울을 믿지 못하자 바나바가 중재하여 함께 교제하도록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울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토론을 하기도 했지만 유대사람들이 죽이려 했기에 형제들이 이를 알고 그를 다소로 보냈고 그 동안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걸쳐 튼튼히 서갔다는 내용이다.

29절에 보면 사울이 그렇게 담대히 말하기도 하고 토론하기도 한 대상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사람들 이다. 그들은 스데반과 토론을 하다가 이기지 못하자 스데반을 죽인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이번에는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말하기도 하고 토론하기도 한 것이다. 이어서 죽이려는 사람들도 원어를 보면 그들이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NIV나 NLT는 말하고 토론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죽이려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앞의 말은 헬라파 유대인들로 번역하고 뒤의 말은 유대인들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한 것이다. 대다수의 주석가들도 스데반을 죽인 헬라파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들일 것으로 해석한다.

원문 그대로 읽으면 분명히 22절에서 사울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사람들도 역시 같은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말한다는 말과 토론한다는 말과 죽이려했다는 세개의 동사는 점층법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단순히 말하다가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격한 토론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이기지 못하자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성경 말씀으로 사울을 이기지 못하자 이들은 사울도 스데반처럼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사울도 스데반처럼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분노하며 죽이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형제들이 알고서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갔다. 지형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과 유대는 산지에 있고 가이사랴는 해변에 있기에 아래로 데리고 갔다는 말을 쓴 것이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해변에 있는 항구도시이고 로마 총독부가 있던 곳이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기에 총독부가 있고 군대가 주둔해 있는 곳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배편으로 사울을 그의 고향인 다소로 보냈을 것이다. 보냈다는 말은 멀리 내보냈다는 뜻이다.

고향이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곳에 안전한 믿음의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Bock, 370). 다메섹에서는 사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게된 사울의 제자들이 사울을 피신시켰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사울을 피신시킨 것이다. 사울은 다소에서 신분을 숨기고서 7-8년간 머물러 있었다.

31절은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이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사울은 다소로 피신했지만 교회는 계속 성장해갔다는 것이다. 이는 사울과 사울을 보호해주던 믿음의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복음을 전한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이러한 복음 전파로 인해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렸다는 것이다. 평화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뜻한다. 이제 교회를 직접적으로 핍박하는 사람들은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러한 평화는 교회가 튼튼히 세워짐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튼튼히 세워진다는 말은 건축물을 튼튼히 세우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교회가 양적으로도 크게 성장하고 영적으로도 성숙해져갔다는 뜻이다. 숫자도 크게 늘어나고 영적으로도 크게 성장했기에 이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하게 되어 평화를 누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기세에 눌려 잠시 잠잠해진 것 뿐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앞으로 나갔다는 말은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해서 평화를 누리던 공동체가 계속해서 주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는 모습을 설명한 말이다. 세력이 커지고 교회가 평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 기세에 눌려 잠시 주춤하고 있는 것 뿐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평화를 누리면서도 계속해서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경배했기에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제자들을 노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스데반도 죽고 사울도 피신을 한 상태에서 주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사람들의 두려움도 여전히 존재했지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낙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위로해 주셔서 새힘을 주셔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평화는 성령께서 복음 확산을 위해 주신 선교전략이다. 적대감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성령께서 위로해주셨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서 믿는 자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담대히 전했고 교회는 그 숫자가 계속 늘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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