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20-22 사울이 제자들과 교제를 나눈 뒤 즉시 일어나 다메섹의 여러 회당들에 가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던 사람이고 잡아 죽이려고 이곳까지 온 사람이 아니냐며 놀랐다.
이전 말씀에서 아나니아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울에게 가서 사울을 형제라고 부르며 안수를 하니 시력이 회복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사울은 음식을 먹어 몸이 회복되고 여러 날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울이 제자들과 교제를 나눈 뒤 즉시 일어나 다메섹의 여러 회당들에 가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그리고 곧"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9절에서 "사울이 며칠동안 제자들과 교제를 하고 나서 즉시" 라는 뜻이다. 여기서 성령 받고 즉시 복음 전하러 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제자들과 여러 날들 동안 함께 있으며 교제를 나누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을 먼저 성령을 받고 복음 전하던 다른 제자들과 나누며 점검을 한 것이다.
그리고 즉시 라는 말은 그렇게 나누어 함께 성령님의 역사를 점검한 뒤 즉시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서 이 복음을 전파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제자들과 함께 교제한 것을 복음 전하러 나가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초적 가르침이 필요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누가는 사울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어느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즉시 나가서 전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교인들과 교제를 나누었지만 그들에게 배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1:12절에서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고 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먼저 예루살렘의 교회를 핍박했었다. 그 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도망간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의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바로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 가서 그곳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은 바로 그 다마스쿠스 회당들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한 것이다.
그래서 21절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랐다고 한 것이다. 놀란 사람들이 말한 것은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던 그 사람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와서 라는 뜻이다. "그가 여기에 온 것도" 라는 말은 "이곳으로 들어온 것도" 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와 믿는 자들을 마구 죽이던 자가 이제 이미 다메섹으로 완전히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메섹 회당들에 속해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이 다메섹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에 모두 두려워했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던 유대인들이 있었다면 박수를 치며 기뻐했을 것이다.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묶어서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변화되어 회당들마다 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던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던 유대인들이나 모두가 다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이는 성령님께서 복음을 확산시키기 위해 주도하여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다.
22절에서 "그러나 사울은 더욱더 능력을 얻어서" 라고 했다.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사울이 점점 힘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육체의 힘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영적인 힘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는 힘을 주시고 영적인 힘도 주셨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면서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고 할 만큼 말씀을 증거하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 참석하는 헬라파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로 증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곳 헬라파 유대인들을 당황시킨 것이다.
개역성경은 당황시켰다는 말을 굴복시켰다 라고 의역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사도행전 2:6절에서 사람들이 성령 받고 각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소동하였다는 말로 쓰였다. 또 사도행전 19:32절과 21:27절에서도 모두 소동을 일으켰다는 뜻으로 쓰였다. 창세기 11:7절에서는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를 혼잡하게 한다는 말로 쓰였다. 역시 어찌할 줄 몰라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울의 능력있는 말에 뭐러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사울을 강하게 해 주셨기에 사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을 했고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에서 예수를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던 사람이었다. 이미 자신을 포함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을 죽인 뒤였다. 아람어를 쓰던 히브리파 유대인들보다 외국에 살면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섬기던 사람들의 신앙에 있어 훨씬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유일하신 하나님만 목숨 걸고 믿는 사람들인데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신성 모독으로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잘 알면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뒤 바로 다마스쿠스 회당들을 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고 다닌 것은 완전히 자살행위였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그러한 자살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