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2-16 주님께서 사울이 기도 중에 아나니아가 손을 얹어서 시력이 회복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자 아나니아는 그가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들에게 악한 일을 한 사람이라며 거부하자 주님께서는 사울이 예수님의 이름을 지고 고난의 길을 갈 택하신 그릇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부르시자 아나니아는 아브라함이나 사무엘처럼 주님 제가 여기 있다고 대답했고 주님께서는 곧은 길이라 불리는 거리에 가서 사울을 찾으라며 그가 기도 중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주님께서 사울이 기도 중에 아나니아가 손을 얹어서 시력이 회복되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자 아나니아는 그가 예루살렘의 거룩한 자들에게 악한 일을 한 사람이라며 거부하자 주님께서는 사울이 예수님의 이름을 지고 고난의 길을 갈 택하신 그릇이라고 하셨다.
12절도 기도하는 사울의 모습이다. 사울이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성령께서 사울에게 앞으로 될 일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나니아는 13절에서 “주님!” 이라고 부르며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자들에게 얼마나 악한 일을 하였는지 나는 많은 사람에게 들었다고 대답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갈 수 없다는 대답이다. 사울에게 가는 것은 도둑이 경찰에게 스스로 잡히러 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나니아도 잡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성도들이란 주님의 거룩한 자들이라는 뜻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직분이 없는 성도나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본래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성도들이란 본래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수께서 오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을 모으셨기에 초대교회성도들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부르는 말로 썼다. 이는 특별히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살아 남은 이들은 모두 도망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한 우두머리에게 가라니 아나니아는 정말 놀랐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던 거룩한 자들을 14절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이라고 말을 바꾸어 말한다.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기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아 가지고 다마스쿠스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모두 긴장을 하고 숨어 있다는 뜻이다.
15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아나니아가 사울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안하시고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가라!" 라는 명령이다. 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울은 주님에 의해 선택된 그릇이라는 것이다. 어떤 택하신 그릇이라는 것인가? 이는 "이방사람들과 왕들과 이스라엘의 아들들 앞에서 내 이름을 지고 갈 그릇" 이라는 것이다.
어떤이들은주의이름을지고간다는말을재판에서증언을하는것이라고해석하기도한다(Pohill, 237). 그러면사도행전 24장에서총독앞에서재판을받으면서증언한것을뜻한다는뜻이다. 또 25장에서아그립바왕앞에서증언한것을뜻한다는뜻이기도하다. 또로마로끌려가황제앞에서증언한다는뜻이된다. 유대인들로구성된산헤드린공회앞에서도재판을받으며증언한다는뜻이된다. 이는분명맞는말이지만주의이름을지고간다는것을너무좁은범위로한정한것이다.
주의 이름을 지고 간다는 뜻은 짐을 지고 고통을 참으며 가는 모습이기에 예수 이름을 증거하면서 받을 고난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총독과 아그립바 왕과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으며 증언한 것도 고난이지만 이는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받은 모든 고난의 짐을 뜻한다고 넓게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의 아들을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지고 간다고 한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간 것과도 닮은 모습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닮은 사역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짊어지고 핍박 받는 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세 그룹은 사울이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주된 그룹들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맨 먼저 나온 것이 예외적이다. 보통은 유대인들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다수는 이방인들이라는 말을 맨 앞에 둔 것이 바울이 주로 이방인들에게 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을 강조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것은 아니다. 바울은 항상 어딜 가든지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고 회당이 없다면 유대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을 찾아가서 유대인들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16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5절에서 주님의 이름을 지고 갈 그릇이라고 한 이유를 16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한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사울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주님께서 보여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을 지고 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면서 고난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거부 당하고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바울도 그렇게 거부 당하고 고난을 받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