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10-11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부르시자 아나니아는 아브라함이나 사무엘처럼 주님 제가 여기 있다고 대답했고 주님께서는 곧은 길이라 불리는 거리에 가서 사울을 찾으라며 그가 기도 중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사울이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빛을 보고 엎드렸을 때 예수께서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셨지만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던 주께서 이번에는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10절에서는 그런데 다마스쿠스에 아나니아 라는 제자가 있었다고 말한다. 제자라는 말은 예수를 믿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라는 말은 아나니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사울과는 반대가 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개역은 다수의 영어 번역을 따라 “그 때에” 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했지만 이 말은 분명히 사울과 아나니아가 반대로 대조가 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아나니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로 사울과 대조가 된다. 아나니아는 예레미야 28:1절과 다니엘 1:6절에 나온 히브리식 이름인 하나냐를 그리스어로 적은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에게도 나타나셨다. 주님께서는 사울을 부른 것과도 같이 아나니아도 똑같이 부르셨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창세기 22:1절과 11절에서 아브라함이 대답하듯 또 사무엘상 3:4-14절에서 어린 사무엘이 대답하듯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아나니야도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뜻이다. “주님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던 사울과는 달리 아나니아는 자신에게 나타나신 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아나니아는 이미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제자였기 때문이다.
다수는 아나니아가 사울의 핍박을 피해서 달아난 피난민이 아니라 다마스커스에서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13절에서 아나니아는 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었다고 했기에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고 탈출한 피난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나니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는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요 군사도로였기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11절에서 주께서는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라고 하셨다. 대부분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가 다마스커스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뻩은 길이라며 아직도 그 길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 길의 양쪽 끝에 큰 문이 있었다고 한다. 다마스커스가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하셨다. 원어에는 그 다음에 "보라!" 라는 말이 있다. "보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이는 1절에서 위협과 살기로 콧김을 내 품으며 식식거리던 짐승 같은 모습과 비교되는 것이다. 그렇게 무섭게 날뛰던 사울이 이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기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마가복음 5:15절에서 옷을 찢고 자기 몸을 돌로 찍으며 날 뛰던 군대 귀신들린 자가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과도 같다. 자기 생각을 따라 분노하고 정죄하며 짐승처럼 날뛰던 사울이 이제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분노가 충만한 마음은 마귀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조용히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