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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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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6:1

불평을 터트리던 헬라파 사람들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4. 10. 30.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6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6:1 제자의 수가 너무 많아지자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성도들은 자기네 과부들이 섬김에서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느껴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불평을 터트렸다.

이전 말씀에서 매를 맞고 나온 사도들은 기뻐하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성전에서 선포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가르쳤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헬라파 과부들이 음식을 나누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아 헬라파 사람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터트리는 장면이다.

1절은 "그런데" 라는 말로 5:42절과 연결이 된다. 사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쉬지않고 가르치고 선포했는데 라는 뜻이다. 이렇게 사도들이 쉬지않고 말씀을 전파하여 제자들이 점점 불어나게 된 때에 뜻밖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떤 이는 바울의 회심과 헤롯의 죽음의 시기를 근거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5년쯤 지났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수가 많아진 때에 라는 말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교회는 예루살렘 안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에 생겼던 문제는 그리스 말을 하던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던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트렸다는 것에 있다.

불평을 터트렸다는 말은 민수기 11:1절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을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이제 제자라고 부른다. 그동안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과 행하는 기적을 보고 믿게 되었지만 제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은 자들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기에 이제 제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공동체 안에는 사도들이 말씀으로 양육한 제자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자 사탄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동안도 하나님 말씀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탄의 작전은 계속 실패했다. 이제 공동체는 제자가 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며 안정적으로 성장해가자 사탄은 더욱 불안해진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새로운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그 사탄의 작전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트렸다" 라는 말에 숨겨져 있다. 당시 교회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말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면에 히브리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이란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아마도 대부분 그리스어를 사용할 줄 알았을 것이지만 하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아주 조금밖에 몰랐을 것이다. 알렉산더가 지중해 연안을 통일한 이후 모든 지역이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본래 자기들의 땅에서 살았기에 아람어를 주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 불평은 그리스 말을 하는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다. 언뜻 읽으면 불평을 터트리게 한 것이 사탄의 작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러한 불평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탄의 작전은 이러한 불평의 말 뒤에 숨겨져 있다. 이러한 불평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의 열등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사람들이란 전쟁으로 인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나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피신해 간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후손들이다. 그렇게 흩어진 유대인들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의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를 썼던 것이다. 이들 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조상들의 땅에 가서 살다가 죽으려고 돌아간 사람들이 상당 수가 있었다. 그리스 말을 하는 과부란 바로 이렇게 남편과 함께 유대 땅으로 돌아왔다가 남편이 먼저 죽은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과부라는 사실 만으로도 사회적인 보호막이 사라진 최고로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과부들이라도 아람어를 사용하던 히브리파 과부들은 유대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일가친척들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과부들은 이방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방 나라에서 자라고 이방 나라에서 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편들을 따라 조상들의 고향에는 돌아왔지만 친척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다 남편까지 죽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말을 사용하는 과부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최고로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새번역을 보면 그리스 말을 사용하던 성도들은 자기네 과부들이 날마다 구호 음식을 나누어 받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에 불평을 터트린 것이다. 개역은 구제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구호 음식으로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단지 "섬김" 이란 말 뿐이다. 매일 매일의 섬김이 먹을 것이나 불쌍한 사람들 구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성도들은 자기네 과부들이 음식 뿐 아니라 모든 사역의 섬김에 있어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다고 느껴 분통이 터진 것이다.

"소홀히 여김을 받기 때문" 이라는 말은 옆에서 라는 말과 바라본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옆에서 바라보고 못본체 하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관심이 보면서도 문제를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 말을 쓰는 유대인 과부들이라고 아람어를 쓰던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해 의도적으로 차별대우를 한 것은 아니다. 섬겨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다른 나라에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기에 잘 모르다 보니 생각도 못하고 빠뜨린 것이다.

문제는 성도들의 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들과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스 말을 하던 사람들의 불평은 이러한 분열을 나타내는 계기판이다. 사도들은 수가 적을 때는 새로 믿게 된 성도들 하나 하나 다 관심을 두고 섬길 수 있었다. 모두가 성령 받고 말씀듣고 기적을 체험하며 모두가 그리스파나 히브리파나 상관없이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갑자기 불어난 뒤에는 사도들도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불어났어도 사도들은 성도들 하나 하나 돌아보며 전처럼 음식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기도 제목도 들어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도들은 새로 나온 사람들의 형편을 일일이 다 알 수도 없었기에 빠뜨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사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기에 그리스 파 사람들만 소홀히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히브리말을 쓰던 유대인들은 그런 일이 있어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말을 쓰던 유대인들은 같은 일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파들은 원래부터 본토에 살던 히브리파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있었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 몇번 생긴 것으로 자신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과부들을 소홀히 한 일을 계기로 삼아 불평을 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차별을 했다는 것에 있지 않고 그리스파 유대인들이 자존감이 낮았다는 것에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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