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2-4 사도들은 식탁 봉사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는 것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그들에게 가르치고 섬기는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섬기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의 수가 너무 많아지자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성도들은 자기네 과부들이 섬김에서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느껴 아람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불평을 터트렸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도들은 식탁 봉사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는 것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그들에게 가르치고 섬기는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섬기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런경우에 사람들은 이러한 불평에 대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소외된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더욱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어에서 2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1절과 연결이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행하던 사역 방식처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가는 그러나 열 두 사도는 많은 제자들을 소집해놓고 말하기를” 이라는 말로 1절의 불평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많은 제자들을 다 소집해 놓고 그들에게 전혀 뜻밖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 해결책은 "식탁봉사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뒤에 버려는 것은 좋지 못하다" 라는 것이다.
좋지 못하다는 말에서 좋다는 말은 본래 "하나님 기뻐 받으실만 하다" 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본래 받은 사명은 제자를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여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기뻐 받으실 제사이다. 그런데 당시 믿는 자들은 재산을 팔아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기적이 일어나자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잘 살펴보고 그들의 필요를 섬기는 것이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도들도 그렇게 섬기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일도 해야 할 일이지만 우선 순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제쳐두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일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을 때 열 두 제자들은 기뻐하며 자신들이 기뻐하는 일이 곧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로 착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생각이 아닌 성령님의 음성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작전은 바로 이것이다. 한꺼번에 몰려든 성도들은 사도들이 열심히 섬기는 것을 보고 고맙다고 하고 박수를 쳐주었던 것이다. 몰려든 성도들은 서로 자기들도 섬겨 달라고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사도들은 이렇게 섬김으로 더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보람을 느끼며 계속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작전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러한 사탄의 작전에 말려들지 않았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부름받은 것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전체 제자들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3절은 그렇게 소집한 회의에서 사도들이 제안하는 내용이다. 3절은 원어에서 "그러니 뽑으라" 는 말로 시작한다. 뽑으라는 말은 본래 높은 곳에서 전체를 잘 살펴본다는 뜻이다. 이는 토끼풀이 가득한 풀밭에 앉아 손으로 뒤져보지 않고 눈으로 하나 하나 보면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 모습과도 같다. 전체 성도들 하나 하나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그 중에 다음의 자격에 맞는 사람을 찾아 내라는 뜻이다.
그 자격은 먼저 "증언 받는 사람들" 이라는 말에 있다. 개역은 “칭찬을 듣는 사람”이라고 의역을 했지만 원어는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에 새번역처럼 신망이 있다는 말이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믿을 만하다는 증언을 받는 사람들을 여러분 가운데서 잘 살펴보아서 뽑으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서서 인정해 주어야할 내용이 바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 이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다. 또 지혜가 충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마음 깊이 깨닫고 사람들에게 그 깨달은 말씀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런 자격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사람들을 양육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격이다. 만약 오늘 말씀에 나온 불평만 해결하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꼼꼼하게 챙겨줄 수 있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 뽑을 일곱명의 지도자들의 자격은 꼼꼼한 심부름꾼의 자격이 아니라 말씀으로 섬길 자들의 자격이다. 불평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사람이 부족했다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삶으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뽑으라고 한 것이다. 이들이 성도들을 섬기게 하면서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4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이제 사도들은 성도들 하나 하나를 섬기며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은 이들에게 맡기는 대신 자신들이 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했다. 말씀을 섬긴다는 말은 1절에서 음식으로 섬기는 일과 2절에서 음식을 베푸는 일과 똑 같은 말이다. 사도들은 이제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신을 충만하게 채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을 충만하게 채운 다음에 음식을 나누어 주듯 전체 성도들에게 말씀을 나누어 주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집중한다는 말은 앞을 향하여 라는 말과 참는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소망 중에 앞만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도행전 2:42절에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라는 말에서도 나왔다. 삼천명이나 늘어난 사람들이 앞만 바라보며 참고 견디면서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한 것이다. 사도행전 8:13절에서는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라는 말에서 나왔다. 빌립을 앞에 두고 계속 인내하며 따라 다녔다는 뜻이다. 사도들은 이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나누어 주는 일만 앞에 두고 계속 그것만 바라보며 섬기겠다는 뜻이다.
사도들은 이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직접 섬김으로 본을 보이며 성도들과 직접 만나서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은 일곱 사람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일곱명을 오늘날 집사의 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는 섬긴다는 말은 있지만 집사라는 말은 없다. 물론 집사라는 말이 섬긴다는 말에서 온 말이지만 집사 제도는 한참 뒤 교회에서 생긴 것이고 이 당시에는 직분을 붙여서 세운 것은 아니다.
만약 일곱사람을 세운 것이 음식으로 섬기는 일 때문이라면 바로 뒤에 그들이 그렇게 잘 섬겨서 제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뒤에는 스데반이 대제사장과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이 나온다. 8장에서 빌립도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따라서 일곱 사람을 세운 것은 사도들이 그동안 하던 섬기며 가르치는 일을 맡기기 위한 것이다. 음식으로 섬긴다는 말을 맡겼다는 것을 가지고 목회자는 기도하고 말씀 선포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집사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만 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후대 교회가 성직자 중심의 교권주의로 자신들의 권위를 지켜려 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정착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교회 오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질을 나누어 준다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언론에서도 교회들을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사람들이 기뻐하던 음식 나누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 일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다가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음식도 나누어 준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도 물질을 나누고 봉사하는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말씀을 나누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가르치시다가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신 것이다. 일곱 집사를 세운 것도 자신들이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필요에 따라 음식도 나누어주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뽑은 것이다. 그래서 성령과 하나님 말씀의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뽑은 것이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은 집사들의 일이고 가르치는 일은 목회자의 일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적인 사역이 아니다. 식탁 섬기는 일을 맡긴다는 말에 꽂혀 그렇게 해석하는 것보다 이어지는 문맥에 근거해서 해석해야 한다. 7절에서도 그렇게 하니 하나님 말씀이 계속 퍼져나갔다고 했다. 또 스데반의 순교와 빌립의 전도가 이어서 나오는 것도 역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가 사도들이 맡겨준 사역을 감당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