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30-33 사도들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여러분이 죽인 예수를 살리신 것이라며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인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회개와 죄사함을 주셨고 자신들은 이 일의 증인이라고 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격분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 성전 경비대장이 사도들을 공회에 세우자 대제사장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 위에서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명령했는데도 그 이름을 온 예루살렘에 가득 채워서 그 피를 자신들에게로 흐르게 했다고 따지자 사도들은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마땅하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며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이 격분하는 애용이다.
30절에 보면 하나님과 지금 사도들을 신문하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한 일이 비교된다. 그 둘 중 누가 옳으냐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라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은 새로운 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기독교는 신앙은 유대교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이 성취된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는데 하나님은 예수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너희들이 하나님께서 예언을 성취하셨는데 너희가 잘못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살리셨다는 말은 일으키셨다는 말이다. 이 말은 두가지로 해석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일으키셨다는 말이 죽음으로부터 살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를 인류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키셨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원어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일으키셨다는 말 바로 다음에 "너희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바로 이어지는 문맥을 통해 본다면 죽음에서 살리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사도행전에서 일으킨다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네번 사용했다(3:6, 7; 9:8; 10:26; 12:7). 또 죽음이나 썩음으로부터 일으키셨다는 의미로 분명히 밝힌 경우는 여섯번이 나온다(3:15; 4:10; 10:40; 13:30, 37; 26:8). 역사적인 무대 위에 등장시켰다는 의미로 사용한 경우는 13:22절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는 것 딱 한 번 나온다. 29절에서 둘 중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고 한 것과 연결해 볼 때도 문맥상 분명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를 죽인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비교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1절은 그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신 다음에 하신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하나님의 오른편 자리에까지 높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오른편 자리는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이고 온 세상 모든 만물의 창조주요 주관하시는 분의 자리이다. 그렇게 높이셔서 "영도자와 구주" 로 삼으셨다고 했다.
개역은 새번역에서 영도자로 번역한 말을 "임금" 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번역이다. 이 말은 왕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개척자 또는 시작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이는 앞장서서 길을 개척해서 뒤 따르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셔서 시작하게 하신 창조주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또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앞장서서 가신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맥으로 볼 때도 30절에서 일으키셨다는 말은 죽음에서 살리셨다는 뜻이 분명하다. 또 이어지는 구주라는 말은 앞장서서 가시면서 뒤 따라오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앞장서서 길을 여실 뿐만 아니라 뒤 따라오는 믿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다. 이 두가지 호칭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공유하고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주셨습니다" 라는 말이 이어서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람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인도자와 구주로 삼으신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 예수님을 일으키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신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회개한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시며 자신들에게 전하라고 알려주신 내용의 요약이다.
32절의 이 일이나 모든 일이라는 말씀으로 번역된 말은 "이 말씀들"이라는 뜻이다. 먼저 사도들이 이 모든 말씀들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들이란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가 바로 길을 개척하며 이끄시는 분이시고 구원자이며 이스라엘을 회개하게 하시고 죄사함을 받게 하시는 분을 가리킨다. 자신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신 모든 증거들을 다 목격했기에 이러한 말씀들의 증인이라고 한 것이다.
또 이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다고 했다. 성령님도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복종하는 사람들이란 29절에서 복종한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권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도들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그렇게 전해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사도들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은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보아서 아는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누가 성령을 받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자기들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를 따랐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목격한 뒤 자기들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세상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세상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 사도행전의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성령을 주시지 않는 것이다. 세상 권력자들이 죽인다고 위협해도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고난을 받을 것이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서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신다.
이렇게 사도들이 자신들과 자신들과 함께하는 성령님께서 자신들이 전하는 예수 부활의 증인이라고 증거하자 이 말을 듣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응이 33절이다. "그러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라고 했다. 격분했다는 말은 톱으로 완전히 잘린다는 뜻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자신들이 완전히 세로로 잘려 심장도 반토막 난 것과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