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32-35 예수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넘치게 되어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예수 부활의 증거들을 나누어 주었고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사도들 발 앞에 재산을 팔아 내 놓아 교회의 이름으로 나누어주게 함으로 나누어 준 사람들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이전 말씀은 그들이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모인 곳이 흔들리고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자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물질을 함께 나누는 내용이다.
32절은 물질을 함께 나누며 살던 초대교회의 삶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또 34-35절 역시물질을 함께 나누며 살던 초대교회의 삶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그 중심 축에 해당하는 33절은 "주 예수 부활의 증언을 나누었고" 라는 말이다. 이는 29절의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간구에 대한 응답이다. 따라서 기도의 응답을 받고 주 예수 부활의 증언을 나누어 주게 된 것이다. 동시에 물질도 나누어 준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난 것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우리도 초대교회처럼 모든 재산을 다 바쳐 헌금하자고 한다면 본문을 잘 못 읽은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기적으로 보여주셨다. 제자들도 말씀을 나누자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타나 물질도 나누게 하심으로 말씀을 보여주신 것이다.
32절은 원어에서 "많은 믿는 자들이"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은 "믿는 무리"로 번역했는데 많다는 말을 무리라는 말로 번역해서 원어에서 많다는 의미가 약화가 되었다. 원어의 의미는 정말로 그 수가 많아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직역을 하기로 유명한 NASB 조차도 "the congregation of those who believed" 로 그 의역을 했다. 이는 신약성서에서 누가가 31번이나 사용한 말로 믿는 자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는 그 숫자가 정말 많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11:12절은 "하늘에 허다한 별들"이라는 말에서 쓰였고 야고보서 5:20절과 베드로전서 4:8절은 "허다한 죄" 라는 말에서 쓰인 말이다. 이는 믿는 자들의 숫자가 정말 많다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지 단순히 교회 회중을 뜻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도 많은 믿는 자들이 모두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고 했다. 한 마음이란 같은 감정을 품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구약에서 심장이란 생각과 지식이 자리잡는 곳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도 생각이 자리잡는 곳으로 쓰였다. 감정이 자리잡는 곳은 콩팥이다. 따라서 이는 모두가 똑 같은 생각과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성령 충만함 받고 모두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같은 증거를 품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모든 성도들이 따뜻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해석한다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또 한 뜻이란 말에서 "뜻"은 살아있는 존재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뜻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한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넘치도록 많은 믿는 자들이 모두가 예수 부활에 대한 똑 같은 생각과 지식을 품고 모두가 한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생각을 품었고 모두가 똑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ESV는 "Now the full number of those who believed" 라고 번역해서 이러한 원어적 느낌을 가장 잘 살렸다고 본다. 따라서 이 말은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에 응답이 되어 이제 말씀을 나누어 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넘치도록 많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 이어서 32절 뒷부분은 "그리고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라고 했다. 이는 30절의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에 대한 응답이다. 이 말은 모든 재산을 다 내놓고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 사회는 소유는 반드시 주고 받는 것이고 그냥 주는 경우는 없었다. 부자가 가난한 자들에게 거져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 주는 사람은 영광의 자리에 서고 받는 사람은 부끄러움의 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당시 사회 질서를 Honor-shame society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냥 주고 그러한 영광의 이름 조차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원시 공산주의라며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가졌다고 해석하면 안된다. 자기 소유를 팔아서 주고는 아무런 표시도 안내고 존경받는 자리에 서서 생색을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냥 주었다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들" 들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오늘날도 말없이 선한 일을 한다는 사람도 많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큰 돈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다. 자선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는 대기업 CEO들도 있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모두가 자기 소유를 거져 준 것 같지만 사실은 다들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거나 존경 받기를 기대하거나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주기 때문이다.
큰 교회에서는 10억 이상하는 파이프 오르간을 기증하는 분들도 있고 청소년들을 위한 체육관을 세워주기도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초대교회 이상으로 큰 돈을 헌금하시는 분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헌금을 한다. 만약 헌금한 것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거나 성도들이 존경을 표시하지 않으면 섭섭하게 생각하고 다투다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헌금 한 것에 합당한 명예를 얻지 못하면 더 이상 그런 헌금이나 기부는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 말씀에서 아무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다는 말은 주고 나서 존경이나 감사의 형태로도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고맙다는 인사말 조차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사회에서 이런 경우는 딱 한가지 경우 뿐이다. 그것은 가족이다. 가족에게 줄 때는 아무 조건 없이 주고 어떠한 형태로도 갚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초대교회는 말로만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라 실제로 한 가족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말로만 한 몸이고 한 가족이라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질 사용에 있어서 진짜로 한 몸으로 여긴 것이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원시 공산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성경구절을 이용하여 공산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공산주의 식으로 사유재산을 모두 몰수해서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갖고 있으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었다는 뜻이다. 이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33절 은 이렇게 공동체가 한 몸이 되어 이렇게 나누게 된 것과 연결해서 하는 말이다. 원어를 직역한다면 "사도들은 큰 능력과 함께 주 예수의 부활의 증거를 주었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었다는 말은 세금이나 빌린 돈처럼 반드시 줘야 할 것을 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큰 능력이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도들이 큰 능력으로 주 예수 부활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성령께서 나누어 주라고 주셨기에 그것을 의무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물질을 함께 나누게 된 것도 사람의 생각이나 결심이 아닌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고 주 예수 부활의 증거를 사람들에게 준 것도 역시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
또 이어서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라고 했다. 원어는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은혜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주신 선물이다.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선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란 사도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고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사도들 위에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어떤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하면서 모든 믿는 자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었다는 말이 사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성령께서 큰 은혜를 사도들에게 주셔서 부활의 증언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큰 능력"과 결국 같은 말이 된다. 따라서 이는 사도들이 큰 능력과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전달해 주었고 그것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는 뜻이다. 성령님께서 큰 능력으로 전하는 부활의 증언을 통해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신 것이다. 보여주신 기적과 들려주신 말씀이 하나가 되어 전해졌기에 큰 은혜를 받은 것이다.
3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33절과 연결이 된다. 왜 그렇게 큰 능력으로 전하고 큰 은혜로 받아들였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은 모두가 다 부자였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말은 먹을 것이 부족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1960년대 까지만 해도 1년 내내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면 부자라고 했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은 신명기 15:4절의 성취이다. 신명기 15:4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라고 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 중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모두가 똑같이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부자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없이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34절 뒷부분에도 원어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있다. 왜 굶주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왔다 라는 말에 있다. 신명기의 말씀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왔기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이 당시 교회 안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33절에서 나온대로 사도들이 전하는 큰 능력으로 전한 부활의 증언에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35절에는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이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라고 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는 말은 교회에 내 놓았다는 뜻이다. 이는 32절에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라는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돈을 가져온 사람이 직접 나누어 주면 받는 사람들은 나누어 준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느끼게 되고 자연히 준 사람의 아래로 들어가 준 사람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져온 사람들이 직접 나누어 주지 않고 사도들의 발 앞 즉 교회에 내놓은 것이다. 교회는 그것을 누가 주었는지 알지 못하게 굶주리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자기 젓을 나누어 주고 존경을 받는 자리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나눌 때에도 무조건 모두에게 나누어 준 것이 아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먹을 것이 없는 성도들이 생기게 되면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팔아 교회에 헌금하고 교회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재산을 판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야 할 일이 생기면 서로 앞 다투어 재산을 팔아 내놓는 사람들이 계속 꾸준히 이어졌다는 뜻이다.
당시 성도들의 기도는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성령 충만해서 담대히 증거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되 교회를 통해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나눈 것이다. 성령 충만의 결과 물질도 나누고 예수 부활의 증언도 나누어 준 것이다. 부활의 증언을 나누는 것이 없고 물질만 나눈다면 자선사업단체가 된다. 물질을 나누는 것이 없이 부활의 증언만 나누며 한 몸의 구성원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그냥 두고 본다면 그러한 부활의 증언은 말 뿐인 거짓이 되는 것이다.
부활의 증언을 나누는 일과 물질을 나누는 일은 모두 다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기도를 드릴 때 성령 충만하게 되어 부활의 주님을 증거할 마음으로 가득차서 모두가 한몸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굶주리는 형제 자매를 돕는 일은 바로 그러한 같은 생각을 품고 한 몸이라는 인식에서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고 절대로 존경을 받으려 하거나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나눌 마음을 주셔서 그러한 기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