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7:3-13 세상에 속한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자는 망할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하: 오직 하나님만 섬기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이전 말씀에서는 개같이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지도자들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서 하나님게서 건져 내시길 원하는 의인이 되라고 했다. 이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계속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3-4절은 2절에 나온 의인들과 대조가 되는 우상숭배자들을 부르는 것이다. 거룩한 자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오라고 하실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자들을 가까이 나오라고 하시는 것은 심판하시려는 것이다. 더러운 자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올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멸망할 뿐이다.
먼저 점쟁이의 자식들을 부르고 이어서 간통하는 자와 창녀의 씨들을 부른다. 간통하는 자와 창녀의 씨들이란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들의 어미는 신을 부르는 점쟁이거나 우상의 신전에서 성관계를 통해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신전의 여제사장인 것이다. 그들의 아비는 그러한 여자들과 간통함으로 이방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자들이다.
4절은 "너희가 누구를 조롱하는거냐? 너희가 누구에게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미느냐?"
라고 했다. 조롱한다는 말은 본래 기뻐한다는 뜻인데 나쁜 뜻으로 쓰일 때는 다른 사람을 두고 놀리며 비웃는다는 뜻이다. 비웃은 뒤에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속이는 것이 순서이다. 그래서 비웃은 다음에는 입을 크게 벌리거나 혀를 내민다고 한 것이다. 누구에게 그렇게 하는가? 거역의 자식이라고 했기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거짓말쟁이의 종자들이라고 했기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로는 떠들면서 실제로는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말쟁이의 씨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상수리나무 사이에서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또 골짜기 가운데서 갈리진 바위 밑에서 자식들을 죽여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무들은 다산을 기원하는 이방종교들의 예배 장소이다. 그런 장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의 여 제사장들과 성관계를 했던 것이다. 비가오고 곡식이 잘되게 하기 위함이다.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던 것도 역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의식이다. 그렇게 해서 비가오게 하고 농사가 잘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6절은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를 말하고 있다. 골짜기의 매끄러운 돌은 와디라는 건천에서 물에 깎인 돌을 말하는 것이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물이 깎아서 만든 돌을 신이라며 섬긴다는 것이다. 그것들에게 술을 부어 바치고 곡식제물도 바쳤다는 것이다. 골짜기와 많은 물에 깎여 매끈매끈해진 돌들은 성적인 이미지를 비유로 사용한 것이다. 우상숭배는 대부분 성관계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7절은 "우뚝 솟은 높은 산에 올라가 거기에다 자리를 갈았다. 거기에서 제사를 지냈다" 라는 것이다. 역시 높이 우뚝 솟은 산도 성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와디라는 골짜기는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다. 이러한 와디의 이미지가 여성을 상징한 것이라면 높이 우뚝 솟은 산은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6-7절에서 비유로 사용된 성적 이미지가 8절에서 구체적으로 확장이 된다."너의 집 문과 문설주 뒤에는 우상을 세워 놓았다" 라고 했다. 우상이란 말은 원어에서는 "너의 기념물(your memorial)" 이란 뜻인데 남근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 남근을 상징하는 돌은 "너는 나를 버리고 떠나서" 라는 말이 설명한다.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났기에 그렇게 그런 돌을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알몸으로 침상에 올라가서" 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성관계를 하는 모습이다.
또 "자리를 넓게 폈다" 는 말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함께 동참하도록 그렇게 자리를 남겨 두었다는 뜻이다. 또 "그들과 함께 자려고 화대를 지불하고" 라는 말은 언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물론 돈은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이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겠다는 언약을 맺은 것이다.
또 "거기에서 정욕을 불태웠다" 는 말은 성적인 장면을 감추어 의역을 한 것이다. 원어는 "너는 그들의 침대를 사랑해서 너는 그들의 손을 보았다" 라는 뜻이다. 넓게 편 침대에는 이미 음란하게 성관계를 하는 중이다. 그 침대 위에 벌거벗고 있는 남자의 손을 보았다는 것은 성기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침대를 사랑했다는 것은 자신도 그 자리에 참여하려고 갈망하는 모습이다.
9절은 "너는 또 몰렉에게 가려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향수를 듬뿍 뿌렸다" 라고 했다. 몰렉이란 말은 왕을 뜻할 수도 있고 몰렉이라는 신을 뜻할 수도 있다. ESV와 NASB는 왕이라고 번역을 했고 NIV와 NLT는 몰렉이라는 신으로 번역했다. 어떤 것이 맞는지 판단이 안될 때는 전후 문맥을 봐야 한다. 바로 이어서 "사신들을 보내고" 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몰렉이 아니라 왕이 맞는 것이다. 만약 개역이나 새번역처럼 몰렉이라고 번역하면 사신이라는 말은 동떨어진 말이 된다.
앞에서 그렇게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다 보니 뭔가 새로운 우상들이 필요했다. 더 자극적인 성관계를 하려고 찾아 나서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래서 새로운 우상을 도입해서 좀 더 자극적인 우상숭배를 하려고 이웃나라로 간 것이다. 또 몸에 기름을 바르고 향수를 듬뿍 뿌렸다" 라는 말은 기름과 향품을 가지고 갔다는 뜻이다.
이는 예물을 가지고 이웃나라 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집트나 바빌론에 갔다. 그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런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최신 음란 종교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신들은 스올까지도 내려갔다. 스올은 실제 지옥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멸망의 곳까지 갈 때까지 갔다는 뜻이다.
10절은 먼 여행 길에 지쳤으면서도 "너는 헛수고 라고 말하지 않는구나" 라고 했다. 헛수고 라는 말은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낙타를 타고 먼 나라로 끝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습이다. 아무런 소망도 없는 죽음에 이르는 길인데도 희망이 없다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너는 새롭게 해주는 힘을 발견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음란한 자극을 얻기 위해 그렇게 멀리 가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는 더 음란한 자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11절은 "네가 그처럼 무서워하는 신들이 누구냐? 도대체 그 신들이 얼마나 무서우면 나를 속이면서 나를 까마득히 잊어 가면서 그 신들에게 매달리느냐?" 라고 묻는다. 이는 마치 다른 남자에 빠져 바람이 나서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찾아 멀리 여행을 떠난 모습과도 같다. 그 남자에게 빠져 신실한 남편은 아예 잊어버린 바람난 여자와도 같다.
이어서 하나님은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질문을 하신다. "내가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고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않는 것이냐?"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람난 여자와도 같은 음란한 이스라엘을 보시고도 내버려두시고 침묵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하시지 않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완전히 바람이 난 여자 같은 이스라엘에게 뭐라고 하실 것 같은가?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너는 네가 하는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네가 한 일을 내가 다 폭로할 것이다" 라는 것이 답이다. 원문은 "나는 너의 의와 너의 행동을 선언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 의는 실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이 의롭다 판단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행동도 옳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섬기는 이방신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네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라고 덧붙인다.
13절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비꼬는 투로 말씀하시며 우상숭배가 쓸데없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너의 우상들에게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 보아라" 라고 말씀하신다. 너의 우상들은 앞에서 말한 나무들과 와디의 돌들 산들 또 먼나라에서 새로 직수입할 최신형 우상들까지 모두 다 가리키는 말이다. "바람이 우상들을 날려버릴 것이며" 라고 했기에 그러한 최고로 매력있는 우상들은 바람에 날아가는 지푸라기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서 "입김이 그것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한 우상들은 섹시해 보이지만 바람보다 훨씬 더 약한 입김에도 다 날아가 버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에게로 피하여 오는 사람은 땅을 차지하여 거기서 살고 나의 거룩한 성전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로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러한 쓸데없는 우상들에게 빠져 있지 말고 얼른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남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섬긴다던 사람들이었다. 저들의 문제는 영적인 간음이다. 하나님과 우상들을 섞어놓고 함께 혼합해서 믿었던 것이다. 마치 수많은 음란한 성관계를 찾아 다니며 어떤 성관계가 더 자극적인 쾌락을 줄까 찾아 다니는 바람난 여자와도 같은 것이 문제였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 세상 것들을 섞어놓고 자신들이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큰 기쁨을 줄지 찾아 다니는 것이 문제이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도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또 다른 것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요한일서 2:15-16절에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과 하나님을 섞어 놓으면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고 사랑해야 한다. 2019년 한해 주님만 사랑하고 의지하여 복을 받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