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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56:9-57:2

Dawn Word

이사야 56:9-57:2

개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그루터기에서 돋는 새싹과 떠오르는 빛 · 이사야 11장 · 60장

2018. 12. 31.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56장 강해 설교

이사야 56:9-57:2 개 같이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지도자들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서 하나님께서 건져 내시길 원하는 의인이 되라

하: 경고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흠이 있는 사람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와는 반대로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 지키는 지도자들을 도적이라고 규탄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9절은 들판의 짐승들에게 와서 먹으라고 초청한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숲속의 짐승들도 와서 먹으라고 초청을 한다. 원어에는 내 백성이란 말은 없다. 문맥에 따라 새번역 번역자들이 삽입한 말이다. 잡아 먹으라는 말도 단순히 먹으러 오라고 초청하는 공손한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고자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로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들짐승들과 산짐승들을 식사하러 오시라고 초청하신 것이다.

10절은 그 초청의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눈이 멀어서 라고 했다. 파수꾼이란 예언자들을 말한다.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자들이 바로 파수꾼이라고 말한 예언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다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벙어리 개가 되어 짖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한다는 것이 꿈이나 꾸고 늘어지게 누워서 잠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전하며 회개하라고 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짖지도 않는 벙어리 개와 같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복주신다고만 떠들고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던 자들이다.

그런데 예언자들의 문제점은 알지 못하고 짖지도 못하면서 게으름만 부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11절은 "굶주린 개처럼 먹는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굶주린 개처럼 먹는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강력한 숨을 쉬는 존재" 라는 뜻이다. 굶주린 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잡아먹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허겁지겁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먹어 치우고도 결고 배부르다고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위험하니 피하라고 짖어야 할 입으로 짖지는 않으면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도 계속 배고프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분별력이 없다고 했다. 모두들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이란 자들이 굶주린 개와 같다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굶주린 개처럼 먹었다면 그 다음에는 마실 차례이다. 그래서 12절은 마시러 오라고 초청을 한다. 우리가 술을 가져올 터이니 독한 술로 가득 채우자는 것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마시자 아니 더 실컷 마시자고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이번에는 술주정뱅이 고주망태 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음식이나 술을 탐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유이다.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재물을 통해 육신의 쾌락을 즐기려는 모습을 술취한 개로 비유한 것이다.

57:1절은 "의인이 망해도 그것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경건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도 그 뜻을 깨닫는 자가 없다" 라고 했다. 지도자들이 개가 되어 먹고 마시기만 하고 실제 의인들은 죽어도 아무도 상관도 안한다는 것이다. 헌신된 경건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은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이다. 누가 데려가는가? 앞으로 임박한 심판 때문에 의인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데려가시는 것이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롯의 가족들을 데리고 가신 것과도 같다. 의인들이 사라져도 아무도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1절 마지막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의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재앙을 피해가는 것이라 했는데 원어에서는 의인들은 재앙으로부터 데려감을 당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미리 데려가시는 것이다. 이제 곧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이다.

2절은 "그는 평화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의인은 개들이 이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벗어나 이제 평화로운 곳, 즉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다.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이제 자기 침상 위에서 편히 누울 것이라 했다. 이는 단순히 죽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굶주린 개들처럼 먹고 마시는 개들이 이끄는 세상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에서 편히 쉰다는 뜻이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이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모두가 다

육신의 쾌락을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고 하나님의 음성에는 관심도 없었다.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또한 따르는 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지도자들은 욕하고 내쫓으며 듣기 좋은 축복의 메시지만 전하는 지도자들만 환영했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2:20-26절 말씀에서는 세상의 탐욕을 따라 사는 자들을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인내와 사랑으로 원수들까지도 참고 잘 가르치는 자들을 깨끗한 그릇이고 하나님 기뻐 쓰시는 그릇으로 비유했다. 지도자들만 문제라며 오늘날 목회자들이 썩었다고 한탄하면 안된다. 그런 목회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런 목회자들을 좋아하며 박수를 쳐주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고 자신만 좋은 것 즐기며 살기 위해 재물을 움켜 쥐는 사람들이 바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먹어대는 굶주린 개 같은 지도자들이고 성도들인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풍족히 쓰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는 인색한 성도들이라면 배부른 개 같은 지도자들이고 성도들인 것이다. 하나님 기뻐 쓰시는 그릇이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의인과 바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불쌍히 여길 줄 알고 함께 나누고 베풀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물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로 데려가시고는 개들만 남겨놓으실것이다. 그렇게 악한 자들만 세상에 남겨 놓으시는 것은 심판을 위해서이다. 이사야가 오늘 말씀을 통해 전하는 것은 바로 남겨진 개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나이가 50이 넘었다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개들이라고 경고하시는 그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개처럼 살아왔더라도 이제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에서 건져내시길 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천만금을 가지고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산다해도 그 모든 것은 불꽃놀이의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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