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11-16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바깥마당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있었고 치료 받은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붙어있었다.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이 놀라며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자.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고치셨다고 증거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 사람은 성전 안 마당으로 들어가 걸어다니고 하나님을 찬양을 했다. 성전 안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모든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가득채워지며 한꺼번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에 정신이 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바깥마당의 솔로몬 행각에 몰려든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고치셨다고 증거하는 내용이다.
이제 성전 안마당에서 있었던 기도회가 끝났다. 11절에는 성전 안 마당에서 바깥 마당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이 없다. 솔로몬의 행각이 성전 바깥마당에 있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기에 기도회가 끝난 뒤 베드로와 요한은 바깥으로 나갔다고 추정할 뿐이다. 어떤 이는 솔로몬의 행각의 위치가 불분명하고 바깥 마당으로 나갔다는 말이 없기에 여전히 성전 안 마당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바깥 마당으로 이동했다는 말이 없더라도 바깥 마당에 있는 솔로몬의 행각으로 이동한 뒤일 것으로 해석한다.
그 곳은 율법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치던 장소이다. 그 곳은 또한 AD 70년 유대로마 전쟁이전에 교회가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보여주며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11절에서 그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을 떠나지 않고 계속 함께 있었다. 성전 안마당에서 기적을 목격한 모든 백성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실제 온 이스라엘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데도 원어는 모든 백성들이 한꺼번에 함께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누가의 과장법이기도 하지만 좁은 성전 안마당에서라면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성전 바깥 마당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너무 놀란 나머지 성전문에서 앞 다투어 나와 솔로몬 행각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12절에서 베드로는 놀라서 한꺼번에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고서 그 백성들을 향해서 말한다. 베드로는 몰려온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행했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왜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바라보느냐고 연이어서 말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경건함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누가 한 것인가?
13-15절에서는 누가 했는지 밝히면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밝힌다. 13절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다고 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언약을 계속 확인시켜 주셨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모든 조상들의 하나님은 언약에 따라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부른 것은 구약의 창세기 때부터 모든 구약성경과 예수님을 연결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란 이사야 52:13-15절에서 나온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룬 종이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그 종은 고난을 받은 후 온 세상 모든 왕들 위에 높임을 받으시는 왕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고난 받게 하신 후 그렇게 영광스럽게 높이신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너희들이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시키기로 결정 했는데도 너희들은 거부했다는 것이다.
13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시켜 준다고 결정한 것을 거부했다고 했는데 14절에서 베드로는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라고 했다. 거절한다는 말이 13절의 거부한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란 구약에서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석방하겠다는 것을 거부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부한 것인 것이다. 원어에는 없어도 되는 "여러분" 이라는 말이 들어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거부했다" 라고 말할 때 여러분을 특별히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부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놓아달라고 청했다는 말은 값없이 너희에게 달라고 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값없이 놓아달라고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는 것을 거부하고 반대로 살인자들을 자기들을 위해 값없이 놓아 달라고 한 것이다.
15절에는 살인자의 반대가 되는 말이 나온다.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은 생명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런 분을 너희가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죽였는데 하나님은 반대로 살리셨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라고 말한다. 예수 부활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능력은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이 아니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라고 16절에서 말한다. 16절은 원어에서 믿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중간에는 그의 이름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그 다음에 또 믿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능력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의 기초 위에서 행해진 것이다. 너희들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이 사람을 강하게 한 것은 바로 그분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이 사람을 완전히 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것을 분리해서 설명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이러한 능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 것이다.
완전히 성하게 했다는 말은 흠없는 제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전에는 흠이 있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제물이었는데 이제 온전한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기적이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이 사람을 온전한 제물이 되게 한 것이 기적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도 베드로의 흉내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는 일에 집중하면 안된다. 예수께서도 병을 고치는 일에 치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시는 일에 집중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베드로와 똑같은 기적을 행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앉은뱅이 믿음인 사람들을 온전한 믿음을 가진 온전한 제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