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9-10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 사람은 성전 안 마당으로 들어가 걸어다니고 하나님을 찬양을 했다. 성전 안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모든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가득채워지며 한꺼번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에 정신이 나갔다..
베드로는 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보라고 한 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고는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 사람은 걷고 뛰게 되어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한 모습을 본 성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다.
9절의 사람들이란 원어에서는 "온 백성들" 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 전체라는 뜻은 아니다. 성전 안 마당에 들어와서 기도하던 모든 백성들이 보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이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누군데 저렇게 성전 안 마당을 걸어 다니면서 저렇게도 기쁘게 찬양을 할까?' 라고 이상하게 생각만 했을 것이다.
10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그러나" 라는 말은 그렇게 평범한 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전 안 마당에 있던 백성들이 갑자기 그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에 모두가 알아 본 것이 아니다. 원문은 계속해서 알아보고 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 사람이 먼저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 좀 봐! 저사람 성전 문에 앉아 구걸하던 그 사람 아니야?” 라고 했을 것이다. 그걸 듣고 자신도 알아 본 사람들은 또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을 보라고 했을 것이다. 저 사람이 바로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서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해 준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인줄 알고 놀란 것이다.
10절 뒷부분은 이렇게 모두가 그 사람을 알아 본 뒤의 반응이다. "몹시 놀랐으며" 라는 말은 놀라움으로 채워졌다는 뜻이다. 놀라움이란 갑자기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을 보고 경탄하다가 그 모습이 너무나 놀라워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다. 그러한 경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득히 채워진 모습이다. 채워졌다는 말이 2:4절에서도 나왔다. 한 곳에 모여있던 제자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히 채워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성전 안 뜰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성령이 아닌 두려움으로 가득히 채워진 것이다.
또 이상하게 여겼다는 말은 바깥에 서 있다는 말이다. 너무 놀랐고 두렵기까지 해서 이제는 정신이 나가서 몸 밖에 서 있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신이 나갈만큼 놀랐는가 하면 "그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다. 그에게 일어난 일이란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한꺼번에 그에게 다가온 일" 이란 뜻이다. 누가복음 24:14절에서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라는 말에서 일어났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예수 부활에 관하여 무덤 문이 열리고 흰옷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나고 무덤 안에는 시신을 감았던 삼베만 있었던 이 모든 일들과 같이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예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날 때부터 못 걷는 사람이 일어서서 걷는 것만으로 한꺼번에 동시에 그에게 다가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가복음에서 24:14절에서 부활에 대한 여러가지 증거들이 계속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증거가 한꺼번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입고 일어서서 성전 바깥 마당에서 걸어다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전 안마당에 들어가서 걷고 뛰어 다니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입고 일어나서 예수님을 죽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있는 성전 안마당에 들어가 그들 앞에서 걷고 뛰어 다닌 것은 그들에게 비수를 꽂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다시 나타난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제사를 인도한 제사장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율법학자들과 경건한 바리새인들이 모두 모여있었을 것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기도시간을 빼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죽이는 데 참여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대부분 다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기적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기적들을 행하시던 것을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정신이 나갈만큼 놀라며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진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6:16절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퍼지자 침례요한을 죽인 헤롯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침례 요한이 살아난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이 놀라운 기적이 또 일어난 것을 보고 자신들이 죽인 예수가 행하던 기적이 또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신이 나갔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이다. 40년이 넘도록 앉아서 구걸만 하던 사람이 성전 안에서 뛰어다니며 찬양하는 모습은 비수가 되어 이들의 가슴에 깊이 꽂혔을 것이다. 똑같은 능력을 행하던 예수를 자신들이 십자가에 달아 죽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