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5-28 베드로는 시편 16:8-11절을 인용하면서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고난 가운데 사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계실 것을 항상 미리 내다보시며 기뻐하셨고 죽으신 뒤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기에 기쁨이 충만하셨다고 증거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전에 모여있던 유대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남자들이라고 부르며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은 경멸하던 나사렛사람 예수를 하나님께서 멀리 바라보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그를 죽였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고통 가운데 사시면서 하나님 앞에 계실 것을 계속 미리 내다보시며 소망 중에 기뻐하셨다는 내용이다.
25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 안에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었느냐 하면 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다윗의 예언을 통해 설명해 나간다. 다윗은 시편 16:8-11절을 통해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라고 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앞(pro)이라는 전치사와 본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앞을 본다는 뜻이기에 본래 미리 본다는 뜻이다. 대부분 영어번역들이나 주석가들은 문맥에 잘 맞지 않기에 단순히 본다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그 자신 앞에 있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31절에서는 개역이나 새번역이나 영어의 ESV나 RSV는 똑 같은 말을 미리 내다본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미리 본다는 말은 미완료 과거이기에 계속해서 미리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시편 16:8절에서는 다윗이 자신을 가리킨 말인데 여기서 베드로는 다윗이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며 고통 중에서 계실 때 늘 자신 앞에 계신 주님을 항상 계속해서 미리 내다보았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예수님을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늘 오른쪽에서 잡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늘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실 것을 항상 미리 내다보고 사셨기에 흔들리지 않고 견디실 수 있었다는 뜻이다.
26절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은 기뻤고 혀는 즐거웠다고 했다. 마음이 기쁘고 혀로는 늘 기쁨으로 찬양했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마음이란 예수님의 감정이 아니라 생각이다. 실제로는 배척을 받으며 이 땅에 계셨지만 생각은 늘 기뻤고 입술로는 입이 찢어지도록 기뻐 노래하셨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내 육체는 소망 속에 살 것이다 라는 말은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가운데 사셨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큰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는 뜻이다.
산다는 말은 텐트를 세우고 그 텐트아래서 항상 산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이 땅에 계실 때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시면서 소망이란 그렇게 잠시 이세상에 텐트치고 사는 나그네처럼 살면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있을 것을 미리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러한 고통 가운데 사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미리 내다보셨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다윗의 이 시편을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소망 위에 집 짓고 항상 살면서 마음은 기뻤고 혀로는 찬양했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27절은 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가 하면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완전히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개역에서는 음부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지옥이라고 번역한 말을 본래 죽은 자들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다수는 예수께서 무덤 속에 계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예수께서 지옥에 가셨을리가 없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어는 분명히 무덤이 아니고 죽은 자들의 세상에 가셨다고 했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셔서 음부에 까지 내려가셨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증거하는 이어지는 말을 보면 무덤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당신의 거룩한 자로 결코 썩음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계시던 그림이 이제 무덤 속에 계시던 그림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영으로는 죽은 자들의 영역에 내려가시고 몸은 무덤에 계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계속 무덤에 둔다면 썩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다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28절은 주님께서 예수님께 생명의 길을 미리 알려주시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것이라는 뜻이다. 개역은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다고 의역을 했는데 원어는 분명히 알게하셨다는 뜻이므로 새번역이 원어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영생의 길이 열린다는 것도 미리 알려 주셨기에 앞으로 부활하셔서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 라는 말은 주님의 얼굴과 함께 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다윗의 시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구약성경 해석 방식이다. 제자들도 역시 예수님을 따라 구약의 모든 말씀들을 예수님께 맞추어 해석했다. 유대인들도 메시야를 기다리며 있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해석했기에 공감하며 경청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베드로가 초점을 맞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배척을 받으시며 고난 중에 이 땅에 사시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실 것을 미리 내다보며 소망중에 견디셨다는 것이다. 죽으셔서 음부에 내려가시기 까지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 중에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고난 중에도 소망 가운데 사신 것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난 중에 살아가지만 우리도 장차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지금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