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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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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사도행전 2:22-24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증거한 베드로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4. 9. 9.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22-24 베드로는 성전에 모여있던 유대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남자들이라고 부르며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은 경멸하던 나사렛사람 예수를 하나님께서 멀리 바라보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그를 죽였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새로운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본 베드로는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예언자 요엘이 한 말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이스라엘 남자들이라고 부르며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은 경멸하던 나사렛사람 예수를 하나님께서 멀리 바라보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그를 죽였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베드로는 이제 "이스라엘의 남자들아!" 라고 말하며 22절을 시작한다. 14절에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남자들아! " 라고 불렀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로 그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길 소망하며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부르며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권고한다. 앞에서는 성령 강림을 말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기만 했지만 분명히 드러내지는 않고 수수께끼처럼 남겨두었었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밝힐 것이니 이제부터 말하는 이 말을 들으라고 요청한다.

11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자기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제 하나님의 큰 일이 바로 "예수 나사렛 사람" 관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베드로는 마치 오늘날 소설이나 연속극에서 다음 내용을 암시하는 복선을 깔아 놓는 것과도 같은 기법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렇게 청중들을 사로잡는 기술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면 배움이 없는 베드로가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수사학적 기술이다.

나사렛 예수라는 호칭은 경멸적인 호칭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무시해서 낮추어 부르던 호칭이다. 베드로는 저들이 부르던 예수님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해서 저들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그 예수는 바로 하나님께서 능력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인 분이라는 것이다. 증명해 보인다는 말은 원어에서 멀리 라는 말과 보여준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원어가 담고있는 문자적인 의미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멀고 높은 곳에 올려놓아 모두가 다 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께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오르신 증거들을 보게 하신다는 뜻이다.

먼저 능력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둘째 놀라운 일이란 모두가 보고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들이다. 셋째 표징이란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는 상징을 의미한다. 이 세가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 들어올려 모두가 다 알 수 있도록 이미 보여주신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일들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라고 했기에 모든 유대인들이 다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이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런 예수를 자신들의 생각과 계획에 따라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에게 넘겨 죽게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23절에서 이러한 예수를 넘긴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을 한다.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이란 하나님께서 미리 둘레를 표시해 놓으신 계획이라는 뜻이다. 이는 창세 전부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미리 그 둘레를 표시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미리 아심이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미리 아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죽일 것이라는 것도 미리 다 아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과 모든 것을 미리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으로 예수님을 죽도록 내어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무법자란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란 뜻이다.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의 손에 넘겨 죽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로마제국 통치자들이 죽였다고 하지 않는다. 바로 한글 번역에는 그 의미가 약화되었지만 원어는 율법 없는 자들의 손을 통하여 바로 너희가 매달아 죽였다고 말한다.

24절은 이렇게 유대인들이 죽인 바로 그 예수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다고 말한다. 죽음의 고통이란 말에서 고통이란 출산의 고통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낳기 위한 출산의 고통 같은 것이라는 듯이다. 베드로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계속 이어간다. 예수님의 죽음의 고통은 출산의 고통과 같은 것이기에 계속 그러한 고통 속에 잡아두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원히 죽음의 고통 안에 잡아 두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활하게 하셔서 영생을 낳게 하시려고 잠시 고통을 주신 것일 뿐이다. 절대로 그 출산의 고통 같은 상황에서 멈추어 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배움도 없는 베드로가 마치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정치가들처럼 복선을 깔아 암시하고 그것을 점차 밝혀나가며 청중들을 사로잡는 기술로 말한 것은 베드로의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미리 아심에 따라 이 땅에 보내신 예수를 너희가 죽였다고 말하는 것도 전에 베드로 같으면 상상도 못할 말이다. 바로 잡혀 죽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에 사로잡혀 두려움없이 담대하게 유대교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한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장 신분이 낮은 여종 앞에서도 부인하며 도망을 갔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을 때 이렇게 변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따르면 할 수 없는 순종을 성령님께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드리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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