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2:14-21

Dawn Word

사도행전 2:14-21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2024. 9. 7.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14-21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본 베드로는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예언자 요엘이 한 말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전 말씀에서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본 사람들 중 소수는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대다수는 정신이 나간 채 당황하기만 했고 그 중 일부는 술에 취했다며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것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설교하는 장면이다.

성령께서 각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을 보고 일부 사람들이 조롱하자 베드로가 벌떡 일어섰다. 베드로만 일어선 것이 아니다. 그 뒤에서 다른 열 한 제자들도 다 함께 일어섰다. 모두가 증인으로 일어선 것이고 베드로는 증인들의 대표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드로의 음성은 두가지 말로 묘사되어 있다.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 들어올린 것이다. 그 다음에 엄숙하게 말했다는 말은 멀리 들리도록 소리를 분명하게 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리를 수직으로 높이 올리고 또한 수평으로 멀리 나가도록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온 힘 다해 소리를 친 것이다. 이는 주로 왕이나 대제사장 같은 사람들이 온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모습과도 같은 모습이다. 구약에서는 점쟁이나 예언자가 신적 계시를 사람들에게 그 받은 말을 전할 때 쓰기도 했다.

소리친 대상은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들이다. 예루살렘 주민이란 예루살렘에 터를 잡고 사는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다. 또 5절에서 나온대로 하나님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한 경건한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변방의 무식한 어부가 유대교 지도자들과 돌아온 경건한 유대인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명령한 것은 두가지이다. 먼저 이것을 알라고 했다. 성령 받고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 사람들에게 사실을 바로 알려줄테니 똑바로 알라는 것이다. 또 그 다음 명령어는 베드로 자신의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줄 테니 귀 기울이고 잘 들어달라는 것이다.

15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똑바로 알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유를 말한 것이다. 지금은 아침 아홉시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림언어로 사용하여 성령 받은 것과 비교하고 있다. 술에 취한 것은 술을 쏟아 부은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침이기 때문에 술을 쏟아 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쏟아부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술을 쏟아 부은 사람은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하지만 성령을 쏟아 부음 받은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베드로는 조롱하는 자들의 말을 사용해서 저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주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16절에서 베드로는 이것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요엘을 시켜서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되게 하신 것이라고 말을 한다. 17-21절에 이어지는 내용은 요엘 2:28-32절에서 온 것이다. 17절은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술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쏟아부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은 주님께서 심판 주로 다시 오시는 날이 아니다. 마지막 날이란 성령께서 오셔서 직접 다스리시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쏟아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쏟아 붓는다는 말은 입에 술을 쏟아 붓는 것과는 그 규모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는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골짜기에 갑자기 엄청난 양의 강물이 쏟아지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마치 댐이 터져 댐에 고여있던 엄청난 양의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쏟아 부으심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 쏟아부어 주시는 것이다.

모든 육체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어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남녀노소나 모든 신분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쏟아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둘씩 짝지어져 있다. 첫번째 쌍은 아들들과 딸들이다. 너희 아들들과 너희 딸들은 예언을 한다고 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던 시대에 아들들이나 딸들이나 상관없이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쌍은 청년들과 노인들이다.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으로 꿈을 꾼다고 했다. 요엘서에는 본래 노인들이 먼저 나오고 청년들이 나중에 나온다. 노인들은 존중되고 청년들은 무시되던 사회에서 그러한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성령을 받고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꿈과 환상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예언을 하도록 알려 주시던 수단들이다. 다니엘 7:1-14절에서 다니엘이 꿈과 환상을 본 것을 가지고 예언하는 모습이 나온다.

셋째 쌍은 18절에 나오는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 이다. 종들은 당시 무시당하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자들이다. 그런 종들에게도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셔서 예언을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17절에서 너희 아들들 너희 딸들이라고 했는데 18절에서는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이라고 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구약성경에는 단순히 남종들과 여종들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뜻한다고 하지만 문맥상 맞지 않는 해석이다. 문맥은 남녀노소 신분등의 차별없이 모두에게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녀들은 너희 자녀들 맞지만 종들은 이제 너희 종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이다. 이젠 신분에 상관이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종들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같이 배움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왕이 연설하듯 전하는 것도 역시 이러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예언이란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끝이 났다고 말을 하며 사도행전 때에 예언은 끝났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말씀을 뜻하는 예언은 끝이 났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예언이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하는 보편적인 지식을 뜻하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을 했다. 칼빈은 희귀하고 탁월한 이해의 은사라고 했다. 결국 여기서 예언이란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쏟아 부어주셔서 아무런 차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19-21절은 이렇게 성령이 쏟아 부어질 때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 것이다. 19절에서 하나님은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는 징조를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 놀라운 일과 징조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같은 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지창조나 출애굽 사건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놀라운 일과 징조가 주님 재림하실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6절에서 베드로는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것이 바로 이 일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미 성취된 일이다.

그렇다면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낸 것은 성령 강림 사건을 말한다. 성령강림은 천지창조나 출애굽 사건과 같은 놀라운 사건이다. 이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오르셔서 성령을 쏟아 부어주신 것이 바로 하늘에 놀라운 일이 나타낸 것이고 땅에는 징조를 나타낸 것이다.

어떤 이는 19절의 징조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전에 있을 표적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메시야가 재림할 때 일어날 현상을 말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와 불과 연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연관이 되는 말이다. 물론 표현 자체는 종말론적 재림을 암시하고 있다.

이어 나오는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는 성자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이미 이루어졌다며 요엘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불과 자욱한 연기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도행전 1-2장에서 불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썼기에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사건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자욱한 연기는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상징하는 말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15:8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차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과 아래로 땅에 징조가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 강림인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임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20절의 해와 달이 어두워진 이야기도 많은 주님 재림하실 때 나타날 종말론적 현상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 앞에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먼저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라고 했다. 원어에서 변한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돌아선다는 뜻이다. 밝은 해가 돌아서서 어두움으로 완전히 바뀐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5절에서 낮 열두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시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눅 23:44-45).

또 이어서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 날 저녁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찾아보니 예루살렘의 금년 Good Friday에 해지는 시각은 오후 7:10분이고 달 뜨는 시각은 오후 7:15분이다. 따라서 해가 떨어지고 나서 5분 후는 아직 밝은 시각이다. 예수님 당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하늘이 오후 세시까지 캄캄했다고 했는데 그 후에도 그 영향으로 달이 핏빛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밝은 보름달이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은 그 빛이 가려져서 어두워진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주님 재림하실 때 일어날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본다면 당시 유대인들은 그렇게 충격을 받았을 리가 없다. 예수님 돌아가시던 날 이러한 해와 달의 변화를 모두가 다 기억하고 있었기에 베드로가 요엘의 예언을 말할 때 모두 다 충격을 받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19-20절의 말을 듣고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베드로는 21절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니 한줄기 소망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성령님을 쏟아 부어 주신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날에 보여주신 것은 분명한 증거를 보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행전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