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7-11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따르고 있었다면서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 아버지를 이미 본 것이라고 하시며 예수님은 아버지와 완전한 연합체라며 하는 일을 보아서라도 믿으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제자들은 이미 완전히 알고 있다고 하자 도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예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가르쳐 주셨지만 제자들은 귀를 막고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왕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며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따르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 이미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자신만이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이 바라보고 나가야 하는 유일한 목표물인 하나님을 알려주고 계신다. 7절에서 예수님은 만약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완료형이라면 만약 완전히 알았더라면 이라는 뜻이기에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는 긍정적인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본들은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약 부정과거라면 너희가 나를 한번이라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뜻이 되기에 책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세기 사본인 P66과 5세기 사본인 Codex Bezae Cantabrigiensis는 부정과거로 기록해서 책망으로 기록되어 있다. NIV는 이러한 사본들을 따라 부정의 의미로 해석했다. 이어지는 8-9절의 문맥을 보면 제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완전히 몰랐다는 책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하나님만 제일로 알고 제일로 섬긴다던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 조차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신 것이다.
이어서 이제부터 너희는 현재 그를 알고 있고 그를 완전히 보았다고 하신다.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알고 있으니 이미 하나님을 완전히 본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갈 존재라는 것을 모두 가르치셨기에 그런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제부터 예수님을 완전히 알고 있는 너희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이고 또 이미 하나님을 완전히 본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예수님을 완전히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자 8절에서 빌립은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좋겠다고 한다. 좋겠다는 말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개역은 족하다고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을 본 것이라 했는데도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시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알게 될 것이고 모든 근심과 두려움은 완전히 박살나서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답답한 빌립에게 예수님은 9절에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눈 앞에 두고도 어째서 보여달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죽도록 종의 모습으로 사랑하며 섬긴 제자들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니 정말 참기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13:21절에서도 예수님은 마음이 괴로우셨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7절에서 만약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한번도 제대로 안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기적으로 보여주시고 말씀으로 들려 주셨는데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1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못하느냐?”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아들이시고 하나님은 또 하나님의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연합을 나타낸다. 또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예수님 안에 항상 머물러 사시며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뜻이다.
11절은 10절에서 질문하는 투로 말씀하신 것을 다시 평서문으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라고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 꼭 기억하고 믿으라는 것이다. 또 “만약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사시면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사시면서 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란 물론 그동안 행하신 기적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바로 앞에서 나왔던 배반할 제자들까지도 사랑하셔서 종의 모습으로 씻기신 것이고 배반할 제자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놀라운 기적은 귀신들을 섬기는 사람들도 때로는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종의 모습으로 배신자들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보고서라도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서 사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는 13: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결되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제자들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우리를 알아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길은 예수님을 목표로 삼고 바라보며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이 곧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