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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3:26-39

Dawn Word

요한복음 13:26-39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한 유다

2024. 5. 25.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3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3:26-39 예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빵 한조각을 소스에 담갔다가 유다에게 주시자 유다는 그 사랑을 거부했기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고 예수께서는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고 유다는 어둠 속으로 걸어나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뒤에 괴로워하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강탈당한 것 때문에 당황하며 예수님 옆에 있던 사랑받는 제자에게 눈짓으로 누구인지 물어보게 하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빵을 주며 네가 할 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다른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고 유다는 나갔다는 내용이다.

26절에서 예수님은 사랑 받는 제자에게만 조용히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내가 이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요한에게 대답하신 것이다. 새번역은 한 조각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려 빵 조각으로 번역했다. 조각이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26-30절에서만 나온다. 이는 본래 빵 한 조각일 수도 있고 고기 한 점을 뜻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유월절이기에 문맥상 빵 한조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조각을 소스에 담갔다가 집어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사랑 받는 제자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었고 유다는 예수님의 바로 왼편에 있었다. 예수님 왼편에 있던 유다의 자리는 두번째로 사랑받고 신뢰를 받는 자리였다. Borchert는 유다의 자리는 예수님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Borchert, 94).왼팔로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오른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면 유다는 예수님의 등 뒤에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오른편이나 왼편에 둘 수 없는 것이기에 유다의 자리는 두번째로 인정받는 제자의 자리였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돈주머니를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유다가 얼마나 신뢰를 받던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신뢰를 받던 유다에게 빵을 소스에 적셔주신 것이다. 빵을 소스에 찍어 주는 것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이고 사랑의 증거이지 절대로 적대적인 행동이 아니다. 더구나 유다는 모두에게 대단히 신뢰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 받는 제자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예수님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받고 나서야 돌이켜 보고 연결해서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인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셔서 발을 씻기신 것이고 빵을 소스에 찍어 주며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갈 유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빵 한 조각을 주며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 마지막 순간에라도 유다가 회개하고 돌아서길 바라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이 빵 조각은 받았지만 그 빵 조각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은 받지 않았다.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분명히 느꼈지만 그 사랑은 받지 않았는 증거가 27절에 나온다. 유다는 빵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한 독일의 학자는 마귀와 예수님의 말이 유다에게 동시에 작용했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빵 조각을 건넨 것이 마법적인 효과를 가져와서 사탄이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다른 독일의 학자도 26절에서 예수께서 한 말에 의해 사탄이 유다를 자신의 소유로 취한 것이고그 다음에 예수께서 네가 할 일을 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빵조각을 소스에 찍어 주시는 동작을 통해서 요한이 증거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최고의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이다..

만약 유다가 그 빵 조각을 받으면서 예수님의 그 사랑을 받았더라면 사탄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12:35절에 보면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 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또 12:46절에서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두움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빛 가운데 머무는 사람은 어둠이 해치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유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의 빛 안에 머물렀더라면 사탄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빛 가운데 거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이제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두번째로 인정받는 제자가 아니라 사탄이다. 유다는 껍데기만 남은 사탄의 허수아비가 되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고 하셨다. 이는 유다가 아니라 유다의 안에 있는 사탄에게 하신 말씀이다. 13:2절에서는 악마가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탄이 직접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다고 했다. 악마는 그리스어이고 사탄은 히브리어이지만 둘 다 같은 말이다. 요한은 특별히 사탄의 본래 이름인 히브리어 이름을 사용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사탄이 직접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고 증거한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10:17-18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며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과 연관해서 읽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은 사탄에게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것이지 힘이 없어 사탄에게 당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28절은 거기에 누워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도 예수님께서 유다의 안에 있던 사탄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29절에서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30절에서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다고 했다. 유다는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고 이젠 들통이 났기에 거기에 더 머물 수 없어서 즉시 나간 것이다. “때는 밤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유다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에 어두움을 향해 나간 것이다. 이 밤은 실제 어두움을 나타내지만 또한 빛과 어두움으로 대조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요한이 상징적으로 증거한 것이기도 하다. 유다가 나가자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심부름을 하러 나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빵 한조각을 소스에 담갔다가 유다에게 준 행동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한 신호가 아니다.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다. 만약 유다가 그 사랑을 받고 감격했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팔려고 했던 것을 회개했을 것이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간 것은 유다 스스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최고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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