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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3:21-25

Dawn Word

요한복음 13:21-25

당황해하는 제자들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5. 24.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3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3:21-25 예수께서는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뒤에 괴로워하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강탈당한 것 때문에 당황하며 예수님 옆에 있던 사랑받는 제자에게 눈짓으로 누구인지 물어보게 하였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을 보내신 분보다 높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히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했다며 예수께서 보낸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21절은 “이 말씀을 하시고”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18-20절에 나오는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미리 말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라며서로 영접하라고 하신 말씀을 하신 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마음이 괴로우셨다고 했다. 개역은 민망하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잔잔한 물이 휘저어져서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 이는 잘 짜여진 진으로 방어하던 군대가 그 진이 적의 기마대에게 무너져 우왕좌왕하며 무질서하게 되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잔잔하던 예수님의 마음에 소용돌이가 치게 된 것이다.

방어하고 괴로우셔서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 라고 했다. “환히 드러내어” 라는 말은 증언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증언하신 것이다. 예수님 마음 속에 있던 괴로움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생각해서 괴로우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 마음에 있던 괴로움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 속의 고통까지 다 드러낼 만큼 그렇게 깊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증언하셨다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주로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증언할 때 쓰였다. 요한복음 7:7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이 악하다고 증언하셨다. 이제 13:21절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 중 한명의 악함을 증언하시려는 것이다. 12:27절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기도하며 자신을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할 때도 역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는 말이 나온다.

이어서 새번역은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개역처럼 증거하였다는 뜻이다. 증거란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진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꼭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말씀은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긴다는 것이다. 그 일이 그대로 성취될 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19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을 해 놓고 나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중 하나가 멸망의 길을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 속에 소용돌이가 쳤던 것이다. 배신할 유다까지도 그렇게 죽도록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그러자 22절에서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서 당황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새번역은 “몰라서” 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의심하더라” 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멀리서” 라는 말과 “바라본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강탈 당하고 나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것을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장면을 그림처럼 나타낸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한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러다가 제자들의 눈이 멈춘 곳이 23절에 나온다. 23절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는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이기에 이 사람을 바라본 것이다. 1:18절에서도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 라는 말이 나왔었다. 이 제자도 예수님의 품속에 기대고 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인 것처럼 이 제자도 예수님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이는 Triclinium이라는 ㄷ 자형 식사자리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주빈인 예수님의 오른편이 상석이다. 이 자리는 VIP가 칼을 맞을 때 방어하는 사람의 자리이다. VIP가 칼을 맞을 때 대신 맞을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기대어 눕는 자리이다. 당시 사람들은 보통 오른 팔로 턱을 괴고 눕기 때문에 이 제자는 예수님의 가슴쪽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모습이 된다. 그래서 개역은 품에 기대어 누웠다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품에 기대어 앉았다고 의역을 한 것이다.

24절에서는 맞은 편에 있던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워있던 제자에게 고개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한다. 새번역은 그래서 그 제자는 예수의 가슴에 바짝 기대었다고 번역했다. 예수님의 가슴에 등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닿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런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니 예수님께 바싹 기대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예수께서 일하는 노예의 차림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서로 섬기라고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의 섬김에 감동을 받은 따뜻한 분위기로 가득찬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하시자 큰 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옷을 다 내려놓고 노예의 모습으로 발을 씻기신 것은 옷을 다 내려놓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제자들을 섬기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들이 누릴 세상 영광으로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떠있는 세상 영광을 갑자기 강탈당하자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기 전에는 제자들과 똑같이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배반할 제자까지도 발을 씻기고 안타까워하며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섬기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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