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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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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13:16-20

우리는 예수님보다 높지 못하다

2024. 5. 23.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3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3:16-20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을 보내신 분보다 높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히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했다며 예수께서 보낸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뒤에 선생이고 주님인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의 종이 되어 발을 씻긴 것은 하나의 모형을 보여준 것이라며 서로 그렇게 종이 되어 섬기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종과 주인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반드시 예수님을 따라 죽기까지 남을 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며 그렇게 예수께서 보낸 사람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16절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시며 기억하라고 강조하실 때 쓰시던 말씀이다. 기억해야 할 말은 두개의 댓구로 되어 있다. 먼저 “종이 주인보다 높지 못하며” 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만약 종이 주인보다 높아지려 한다면 고대 사회에서는 죽음 말고는 아무런 다른 길이 없다.

또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라는 것이다. 보냄을 받은 자라는 말은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들에서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제자 삼으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여기에서만 나오는데다가 보낸 사람이라는 말과 짝으로 나오기에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일반적인 의미로 보낸 사람은 왕이고 보냄을 받은 사람은 이웃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왕의 신하를 의미한다. 이웃나라에 왕을 대신해서 파견된 사람이라면 높은 사람이지만 그를 보낸 왕보다 높지는 않다는 뜻이다. 종과 주인이라는 말이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와 짝을 이루며 대조된 것은 종과 주인 신하와 왕의 의미인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보낸 사람이라는 말이 소유격으로 쓰인 경우는 요한복음에만 아홉 번이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여덟번은 예수께서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말할 때만 썼다. 게다가 20절에서 예수님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 부분의 문맥이 직접 의미하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6:40절에서는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다고 했다. 마태복음 10:24절에는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에서 종과 주인, 보냄을 받은 자와 보냄을 받은 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저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셨다면 제자들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절은 이러한 의미를 분명히 해 준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종이 제 분수를 알고 주인의 명을 따라 섬긴다면 복되다는 것이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죽기까지 제자들을 섬겼다면 너희들도 역시 죽기까지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종이 만약 주인 노릇한다면 이는 복의 반대인 저주를 받을 자인 것이다. 12절에서 “내가 너희가 한 일을 알겠느냐?”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답이 바로 17절인 것이다.

그러나 18절은 제자들 모두가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제자들들 모두가 종의 분수를 알고 예수님을 따라 섬겨서 복이 있는 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저주를 받을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완전히 안다고 하셨다. 본래 랍비가 제자들을 찾아 선택하는 경우는 없다. 제자들이 스스로 랍비를 찾아 오는 법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과도 같은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도 스스로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 선택하셨는데도 모두가 다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는다면 선택하신 분의 잘못이 아닌가?

18절 뒷부분은 원어에서 그러나 그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 말씀은 내 빵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시편 41:9절에서 온 말이다. 새번역은 배반하였다는 말로 의역을 했지만 원어는 발 뒤꿈치를 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나귀가 먹이 주는 주인을 발 뒤꿈치를 들어 발로 차는 그림이다. 길 고양이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발을 들어 할퀴는 그림이다. 발을 들어 상대에게 발바닥을 보이는 것은 그 발로 밟겠다는 뜻이고 경멸의 상징이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선택하셨지만 그 마음까지 예수님께서 다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다 조종하여 강제로 순종하도록 만들지 않는 것과도 같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선택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 중에 배반할 자가 있다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19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 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곧 나” 라는 말은 구약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말이고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미리 알려 주신대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이 하나님 임을 알게 하려고 미리 알려 주셨다고 하신 다음 20절에서는 또 다시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공식을 사용하셨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알려주신 진리의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은 예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사람들을 영접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분이 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을 섬기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기셨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 역시 종의 모습으로 섬기되 죽기까지 섬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섬기며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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