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4:1-10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베푸실 것이다.
하: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나: 구원의 기쁨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찬양을 하면서 자녀를 낳아서 잘 기르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해 자원해서 죽으셨기에 하나님은 그 종이 많은 자손들을 보며 영원히 살게 하셨고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셔서 살리시려고 벌거벗겨져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죽으셨기에 전리품을 나누는 개선장군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종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오늘 말씀은 임신하지 못해 버림 받은 여인이 회복되는 그림으로 선포한다.
1절은 "임신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여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노래하라는 말은 넘치는 기쁨을 감추지 말고 소리치라는 것이다. 또 이어서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너는 환성을 올리며 소리를 높여라" 라고 한다. "소리를 높여라" 라는 말은 앞에서 "노래하여라"
라고 번역된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환성을 올리며" 라는 말만 추가한 것이다. 해산의 고통을 겪을 때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지만 이번에는 기쁨의 함성을 소리 높여 외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원어에서 대조되는 말은 버림받은 여인과 결혼한 여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자녀를 낳지 못하면 남편에게 버림받았기에 버림받은 여인과 결혼한 여인이 비교되는 것이다. 그런데 버림받은 여인이 더 많은 자녀들을 본다는 것이다. 이 버림받은 여인의 이름은 시온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남편으로 비유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내로 비유된다. 하나님과 결혼한 관계라는 뜻이 아니다. 결혼한 부부처럼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 한분만 사랑하며 살아야 하기에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다른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음란한 여인으로 비유하기도 하는 것이다. 시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아야 했다. 그러나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우상숭배를 했기에 하나님의 자녀를 낳지 못하고 쫓겨난 여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의 고난과 죽음으로 이제 시온은 많은 자녀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2절은 "너의 장막 터를 넓혀라. 장막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라" 라고 말을 한다. 고대 근동의 유목민들은 텐트를 치는 일을 여인들이 맡았었다. 많은 자녀들이 돌아와 시온과 함께 살 것이기에 먼저 텐트 칠 자리를 넓게 마련하고 텐트를 더 넓게 치는 것이다. "너의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라고 한 것도 텐트를 넓게 쳐야 하기 때문이다. 텐트가 커지니 말뚝을 더 깊고 단단히 박아야만 텐트가 날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텅빈 시온의 텐트에는 이제 하나님의 종의 고난과 죽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돌아와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3절은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라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북쪽을 오른쪽이라 했고 남쪽을 왼쪽이라 했기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가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동쪽은 요단강과 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서쪽은 지중해가 있기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가라는 것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텐트를 넓게 치면 되었지만 자녀들이 장성하여 분가하기에 넓게 퍼져나가라고 한 것이다. "이방 나라들을 차지할 것" 이라는 말은 신명기(9:1; 11:23; 12:2; 31:3)에 보면 가나안 땅의 많은 민족들을 쫓아내고 차지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제 다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남북으로 길게 뻗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4절은 갑자기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이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아라! 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었고 수치였다. 그러나 이제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말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수치를 잊는다는 말은 결혼해서 남편과 살면서 아이를 낳지 못해 겪던 수치를 뜻한다. 또 과부시절의 치욕은 남편에게 쫓겨나 친정집에 돌아와 살거나 혼자서 살게 되던 때의 치욕을 말한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수많은 자녀들이 하나님의 성 시온과 하나님의 나라 안에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지 5절에 이어진다. 그 이유는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라는 말에 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남편이 되시기에 시온을 지으신 분 께서 누구보다도 시온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 이라고 했다. 만군의 주님이란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분이 지켜 주시니 아무 것도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이라고 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다 잃고 아무 것도 없었던 나오미를 위해 보아스가 값을 지불하고 땅을 되찾아 주고 룻에게 자녀를 낳게 해 준 것을 떠올리는 말이다. 그렇게 시온을 회복시켜 주신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기 19:4절에 나온 것처럼 독수리가 그 새끼들을 업어 나르듯이 이스라엘을 업어 나른 그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구속하신 그 백성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다.
6-8절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모습과도 같은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6절에서는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는 말은 젊은 부부는 아들 딸 많이 낳고 복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꿈을 꾸었던 때를 회상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하자 버림받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던 것이다.
7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말로 시작한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다시 불러들이겠다" 라고 했다. 믿음의 자녀들을 낳지 못하고 음란하게 우상숭배하는 시온을 잠시 버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큰 긍휼로 다시 불러들이신다는 것이다. 8절은 7절과 비슷한 말이지만 감정이 한층 더 고조된 말이다.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라고 했다. 분노가 북받쳐서 라는 말은 분노가 홍수처럼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노아 때 홍수로 모든 사람들을 멸하신 것과 같은 분노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앞에서는 큰 긍휼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영원한 사랑이다. 이제는 영원히 버리지 않고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속량자의 말이란 보아스처럼 값을 지불하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이란 뜻이다.
9절은 분노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노아 때에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이제 나는 너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다시는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종 메시야께서 모든 죄를 다 지시고 대신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10절은 왜 변하지 않겠다고 하시는지 설명한 것이다.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 라고 했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산과 언덕이다. 산과 언덕은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평화의 언약은 하나님의 종 메시야의 죽음으로 맺은 언약이다. 그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이 범죄를 한다해도 다시는 언약을 무효로 만들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지키는 것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언약을 통해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를 불쌍히 여기는 부모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셔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신 것이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같은 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이제 거룩해져서 자녀를 많이 낳기 때문에 영원히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기에 그 피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기에 영원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잘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범죄하고 거룩한 자녀를 낳지 못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계속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닮아가며 예수님의 사랑의 발자취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 기쁨이 마치 불임 여성이 많은 자녀들을 얻은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것이기에 기쁨의 함성을 외치며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를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