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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2:41-43

Dawn Word

요한복음 12:41-43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산헤드린 공회원들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5. 16.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2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2:41-43 산헤드린 공회원들 중에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한 때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 했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는데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대적한 이유를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고치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았지만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드러내지 못했고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영광을 더 사랑했다는 내용이다.

새번역 41절은 요한이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번역했다. 개역은 “주의 영광” 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예수의 영광이나 주의 영광이 아니고 그의 영광이다. 그의 영광을 보았고 그에 관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예수님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사야 53:2절부터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한 내용이 나오기에 이사야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말한 것이다. 보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히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은 원어를 직역하지 않고 해석된 번역을 한 것이다.

계속해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믿지 않은 것을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말하다가 갑자기 42절에서는 “지도자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으나” 라고 했다. 원어에는 42절 맨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있다. 이사야는 유대인들이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예언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지도자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예언이 틀린 것인가?

여기서 개역은 관원이라 번역하고 새번역은 지도자라고 번역한 말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을 말한다. 앞에서는 수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갔고 이방인들까지도 따라 갔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유대인들 중에 제일 높은 사람들인 산헤드린 공회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한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믿었다는 말은 한번 믿었다는 뜻이고 계속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예언은 분명히 성취되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말은 믿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고백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율법을 주도하고 있던 바리새파 사람에게 정죄를 받고 유대교에서 쫓겨날까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고백하지 못했는지 43절에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라는 것이다. 사람의 영광이란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박수 갈채를 받는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사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박수를 받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예언은 분명히 성취된 것이다.

이는 40절에서 하나님께서 고침 받지 못하게 하셨다고 한 말을 오해하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믿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것은 결국 구약에서 간음으로 비유한 우상숭배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고 그들은 그 영광을 보고 믿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였고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더 사랑해서 돌아서지도 못하고 고침을 받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책임은 전적으로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며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믿음이라 할 수 없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도 그런 사람들은 한번 예수를 믿었었다고 했지 계속해서 믿었다고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경험이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믿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하기 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면 요한은 그런 믿음을 일회용 믿음이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를 두려워하는가에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전해주신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회용 믿음이 아닌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이는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세상 영광을 사랑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구약성경은 믿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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