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34-36 무리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성경에서 들은 그리스도는 영원히 자신들과 함께 머무는 존재라며 예수님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누구냐고 하자 예수께서는 잠시 빛이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 그 빛을 믿고 그 빛의 아들들이 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무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고 예수께서는 이제 사탄이 그 통치 영역에서 쫓겨날 것이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며 자신의 죽음이 영광 받는 길임을 알리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다며 당신은 누구냐고 하자 빛이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34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33절과 연결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고 설명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무리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 “우리는 율법에서 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까지 머물러 계신다는 것을” 그런데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머물러 있다고 정확히 말한 곳은 없다. 시편 89:4절을 보면 “너의 씨를 영원히 세우고 너의 보좌가 모든 세대 동안 지어질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시편의 다른 곳과 이사야 9:7절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말은 구약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모세오경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무리들은 “어째서 당신은 말하기를 인자가 높이 들려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 인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습관적으로 자신을 인자라고 불렀다. 유대인들은 다니엘에 나오는 인자(사람의 아들)가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스도와 인자를 같은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 들려야 한다는 말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뜻이기에 질문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고 하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리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뜻은 알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앞으로 영광되게 하겠다는 말은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무리들은 23절의 인자가 영광 받을 때가 바로 32절의 인자가 십자가에 달릴 때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무리들은 어둠 가운데 서 있던 자들이다. 저들은 사탄의 영역에서 자신들을 사랑하던 자들이다. 그래서 메시야는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잘 살게 해 주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자신을 따라 죽으라고 가르치는 메시야는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다. 메시야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인자는 다니엘에 나와 있는 말이지만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가리킬 때 쓰시던 칭호이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인자가 곧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마지막에 도대체 인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이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며 거부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35절에서 이러한 저들의 잘못된 믿음을 교정해 주셨다. 35절도 역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무리들이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거부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35절에서 “아직 짧은 시간 동안 그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 빛이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시간이 이제 조금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폭발시간을 맞추어놓은 시한폭탄처럼 잠시 동안만 함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어서 “너희는 그 빛을 가진 것처럼 걸어다녀라” 라고 하셨다. 빛을 가진 것처럼 걸어 다니라는 말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면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빛이 밝게 비치고 있는 동안에는 어둠이 그 빛을 덮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이 사라진 뒤에는 어둠이 덮칠 수 있는 것이다. 빛의 영역 안에 거한다면 어둠의 영역으로 쫓겨난 사탄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어둠 안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빛으로 나오지 않고 어둠 안에서 계속 다니면 사탄에게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인데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도 모르고 끌려 간다는 것이다. 빛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둠 가운데서 사탄의 밥이 된다는 것이다.
36절은 예수께서 이 부분에서 가르치시는 내용의 결론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빛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으라. 그래서 너희는 빛의 아들들이 되어라” 라고 하셨다. 이제 며칠 남아있지 않은 시간에 빛되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믿고 빛의 자녀들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이어서 요한복음의 기록자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서 몸을 숨기셨다” 라고 했다. 이는 예수님을 따라오며 환호하던 무리들과 예수님을 마중 나온 무리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절했다는 뜻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다리며 믿고 있던 그리스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사칭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을 당장 잡아 죽이려는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숨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이들 앞에 나타나는 날은 이제 십자가에 달리는 날이 될 것이다. 그만큼 분위기는 험악해진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자신들에게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게 해 줄 존재로 믿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해석하고 믿은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보고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빛을 가지고 다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