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0-23 유대교를 따르던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빌립에게 청하자 예수께서는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 목격한 증인들이 계속해서 증언을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던 무리들도 예수를 맞으러 나오는 것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온 세상이 다 예수를 따른다며 이제 다 틀렸다고 한탄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 사람들이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길 청하자 예수께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그런데” 라는 말로 19절과 연결된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새로운 내용으로 보고 and나 now로 번역한다.그러나 문맥을 보면 앞에서 나온 예수님을 따르던 명절에 모여든 유대인 무리들과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대조되는 다른 사람들이 등장했기에 “그런데” 라는 말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소문이 이방 사람들에게까지 퍼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 사람이란 실제 그리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들은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왔다고 했기에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유대교를 따르던 자들이다. 여기서 그리스 사람이라는 말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개종자일 수 있다. 개종자라면 할례를 받고 공식적으로 유대교에 완전히 입교한 사람들이기에 유대인처럼 취급되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할례를 받지는 않고 유대교를 따르던 사람들을 경건한 사람들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명절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라왔다고 했기에 이들이 정식으로 할례를 받고 완전히 유대교로 입교한 개종자로 본다. 하지만 예배하러 온 것이 개종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개종하지 않아도 이방인의 뜰에는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는 받지 않고 유대교를 따르는 경건한 사람들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 자체에서이들이 개종자인지 경건한 사람들인지 구별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명절에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올라온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요한이 이 부분을 통해 말하는 것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유대교를 섬기던 이방인들에게까지 퍼졌다는 것이다.
21절에 보면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 가서 청하였다” 라고 했다. 빌립의 동네인 벳세다는 갈릴리 호수의 동북쪽에 있던 도시로 AD 34까지는 갈릴리에 속하지 않고 헤롯의 다른 아들인 빌립에게 속한 영토였다. 이들은 데가볼리와 경계 없이 왕래했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라는 이름을 보면 빌립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빌립의 고향과 연결된 갈릴리 동남쪽과 연결된 데가볼리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전부터 빌립을 알았고 말도 통했기 때문에 빌립에게 다가와서 빌립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22절에 보면 빌립은 또 안드레에게 이 말을 전했다. 안드레도 그리스 식 이름이기에 안드레 역시 빌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예수님께 가서 그 말을 전했다. 4세기의 교부이고 역사가였던 Eusebius는 그가 쓴 교회사에서 빌립은 골로새와 인접해 있던 히에라폴리스에서 죽었다고 기록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빌립에게 다가온 것은 앞으로 빌립이 앞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것을 미리 알려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사람이 예수님께 오자 23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라고 하셨다. 그리스 사람들이 때를 알리는 신호탄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때까지 할례 받고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하지 않은 그리스 사람들은 유대인의 성전에서 유대인들의 뜰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가 왔다는 것은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없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때가 왔다는 뜻이다.
영광 받으신다는 말은 24절에 이어지는 씨앗의 비유로 볼 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다는 뜻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자신의 피로 거룩하게 씻어 하나님께 드릴 때가 왔다는 뜻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실 때가 왔다는 뜻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받으시는 것이 곧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어지는 24절 이후에 예수님을 따라 한 알의 밀알처럼 죽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려는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기에 우리도 역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도 장차 영광을 받는 길인 것이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는 복음 전하다가 욕을 먹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삶을 살며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지라도 묵묵히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도 영광을 받는 길이다. 우리를 통해서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