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11 큰 무리들이 유대사람들 중에 나와서 예수님과 나사로를 구경하러 와서 보고 믿게 되자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도 죽이려고 계획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 유다는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며 책망했지만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며 내버려 두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를 구경하러 왔고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고 모의하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9절은 “그러므로 유대사람들로부터 온 큰 무리의 사람들이 알았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새번역은 유대사람들과 크게 떼를 지어 몰려왔다는 말을 나누어 번역해서 원어를 뭉개놓았다. 원어는 유대사람들로부터 나온 큰 무리들이다. 대부분 유대사람들로부터 나온 큰 무리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는 곳이기에 예수님께 적대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유대사람들이라는 말은 적대적인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는 유대사람들이라는 말이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들을 가리키는 말로 썼지만 이번에는 유월절이 가까웠기에 명절에 모여든 무리들이 호기심으로 예루살렘에서 구경을 왔을 것이다. 호기심 때문에 몰려든 큰 무리들과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공식적인 지도자 무리들이 대조가 되는 모습이다. 유월절이라는 명절을 배경으로 하기에 몰려든 유대인들로부터 나온 많은 무리들이라는 말은 호기심에 몰려든 무리들일 것이다.
이들은 그가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알았다는 말은 스스로 깨달았다는 뜻이 아니고 배워서 알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것을 목격자들에게 배워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호기심은 오직 예수 때문만은 아니고 나사로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마치 나사로를 보러 왔다는 것처럼 번역했지만 원어는 영어의 not only… but also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나사로를 함께 보러 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때문만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일어켜진 나사로를 보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번역해야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것이다. 나사로를 살린 기적을 본 예루살렘 사람들이 돌아가서 바리새파 공회원들에게 말하자 그 소문은 명절에 예루살렘에 몰려든 수많은 무리들도 그것을 배워 알고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나사로를 보고는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부적절한 것이라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 하셨다. 표적에 근거를 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처럼 순수하고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음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에 근거를 둔 초보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요한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예루살렘 사람들 중 나사로의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들이 나사로의 장례식에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다. 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의 바리새파 사람들이기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 빼앗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절에 몰려든 수많은 무리들이 목격자들에게 배워서 알고 몰려들어 나사로를 확인하고 믿게 된 것이다.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로 나가다는 모든 유대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게 생겼다. 그래서 이것을 보고 있던 대제사장들은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10-11절에서는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 이유는 나사로 때문에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서 확인하고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나사로를 죽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속 나사로를 구경하러 갈 것이고 눈으로 확인한 뒤에는 계속 예수를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믿음이지만 기적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기적의 증거 조차도 없애버리려는 대제사장들의 모습이 대조된다.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죽은지 나흘이 된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살리신 나사로를 죽이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죽이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부귀 영화가 이들에게 하나님이고 이들이 섬기는 진짜 우상이기에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대제사장들의 모습은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으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러한 세상 영광을 하나님을 삼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흉내내는 사탄의 삼위일체에 속아 짐승의 표를 받은 것이다. 예수님 믿음으로 세상의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을 얻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는 것은 교회 역사와 오늘날 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늘 깨어 조심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5:8-9절에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