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1-3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 코 앞인 베다니 나사로의집에 가셨고 나사로의 가족은 음식을 준비하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모의하는 것을 전지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시고 충돌을 피해 에브라임이라는 곳으로 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기 위해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다시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붓는 장면이다.
12:1절도 ‘그러므로’ 말로 시작한다. 대부분 그러므로 라는 말이 바로 앞부분에서 예수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는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거의 대부분 영어 번역들도 그러므로 라는 말을 삭제하고 번역했다. NASB만이 그러므로 라는 말을 그대로 살려 번역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이 이유없이 그러므로 라는 말을 넣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요한은 여기서 예수께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라는 말은 지명수배령을 내렸으므로 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앞에서 공회원들은 예수님이 절대로 안 올것이라 생각하고 지명수배령을 내렸는데 예수님은 지명수배령이 내려졌으므로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가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행동하신 것이다. 지명수배령이 내려졌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죽으시려고 예루살렘 코 앞인 베다니에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고조된 긴장은 예수님의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더욱 높아졌다.
유월절 엿새 전이란 안식일인 토요일이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 시작된다. 대부분 금요일 저녁 해가 지기 도착하셨을 것으로 해석한다. 12:9절에서 사람들이 몰려온 것은 토요일 해가 진 후 안식일이 끝났기 때문이다. 유대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켜 움직이지 않았기에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시작하기 전 이동하여 금요일 저녁 해가 지기 전에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것이다.
죽이려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긴장의 장면이 잠시 멈추어지고 갑자기 나사로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잔뜩 고조된 긴장이 잠시 멈추어 있어 그 긴장감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지명수배를 내리자 에수님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자진해서 죽으러 베다니에 가셨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다.
향유를 부은 사건이 마태 마가 누가에도 나오기에 공관복음과 일치시키려고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가 문둥이 시몬의 집의 잔치에 참석한 것으로설명하려 하기도 한다. 시몬과 나사로의 가족의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르다가 심부름을 했기에 반드시 가까운 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2절에서는 그들이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만들었다 했기에 나사로의 가족들이 집 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복음에서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과는 전혀 사건이다. 2절에 보면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음식을 대접하고 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주빈과 함께 누워있는 것 역시 나사로가 집 주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3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진다. 식사 준비가 되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식사를 하기 전 유대인들은 손님의 발을 씻기고 올리브유를 발라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고 했다. 이는 북 인디아 산 나드 뿌리에서 추출한 향유인데 순도 100퍼센트 진짜 라는 것이다. 그 양은 약 12온스 정도된다. 이는 왕의 대관식 때도 보기 힘든 엄청난 양의 귀한 향유이다.
본래 그 집 종이 물로 발을 씻기고 올리브유를 발라주는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 되겠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물 대신 최고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있다. 이러한 향유는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 때 그 머리에 조금 붓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최고급 명품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12온스를 다 쏟아 부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 머리카락은 가장 존귀한 부분이고 발은 가장 비천한 부분이다. 머리는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말로 쓰고 발은 가장 낮은 신분을 상징할 때 쓰기도 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존귀한 부분으로 예수님의 가장 낮은 발을 씻겨드림으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예수님은 최고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세우는 대관식에서 부은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한 것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죽음을 준비한 것이다. 본래는 시체의 발에 붓는 것인데 마리아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였고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머리에 부은 것을 발에 부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라고 했다. 향유의 가치는 그 향기에 있는 것이다. 마리아가 최고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은 최고의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마리아가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드린 최고의 존경이 온 집안에 가득차게 된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에서 모였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경배하는 향기가 온 교회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앞에서 나온 예루살렘의 바리새파 사람들은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기적을 목격하고도 로마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죽이려 했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 사람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죽이려 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기에 두려워하지도 않은 것이다. 대신에 눈에 보이는 로마 사람들만 두려워한 것이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드려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거룩하게 포장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가면을 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만 두려워하여 가면을 벗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