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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1:34-37

Dawn Word

요한복음 11:34-37

제자들의 실패와 불신자들의 멸망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4. 26.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1:34-37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을 때 예루살렘에서 온 일부 유대사람들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라고 했고 일부 는 미리와서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느냐고 빈정거렸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마친 마르다는 가서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오셨다고 비밀리에 말했지만 마리아는 모두가 다 알도록 갑자기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온 조문객들이 함께 따라오도록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시는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으시고 눈물을 흘리시자 유대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사랑했던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는지 말하는 장면이다.

원어의 의미는 분명히 예수께서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보고도 절망하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 그 믿음 없음에 분노하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말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을 세워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라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심으로 저들의 믿음을 바로 세워주시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와 보십시오” 라고 대답했다. 이는 함께 무덤에 가서 울자는 초청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11:3절에서 “주님 보십시오” 라고 한 말과도 비슷한 표현이기에 마리아와 마르다일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함께 울어 주시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나사로의 무덤으로 초청하여 함께 울자는 뜻이다.

게다가 35절에서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라고 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은 33절에서 마리아와 따라온 유대사람이 울었다는 말과는 다른 말로 신약성서에서는 여기서만 나온 말이다. 마리아와 유대사람들이 운 것은 크게 소리내어 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은 눈물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눈물에 대해 대부분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어떤 이는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죽음을 직면하면서 통치권을 드러내신 것이지만 육신이 되신 로고스로서는 죽음의 파괴적인 결과가 보여질 때 인간의 분노와 슬픔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한다. 어떤 이는 나사로를 살리실 것이기에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같은 죄와 죽음과 같은 불신앙에 대한 슬픔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그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눈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33절에서 예수께서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신 것과 연관시켜 보고 이어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면 이는 분명 불신앙으로 인해 제자들이 넘어질 것이나 영원히 멸망하게 될 불신자들을 두고 슬퍼한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흘리신 분노와 안타까움의 눈물일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 제자들이 모두 실패할 것을 바라보시며 흘리신 눈물이기도 할 것이다. 끝까지 믿지 않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할 것을 바라보며 흘리신 눈물일 것이다. 잔잔한 마음에 돌이 떨어져 크게 출렁이다가 이젠 그 물이 흘러 넘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36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진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본 예루살렘 사람들은 두 가지로 다르게 반응했다. 그 중 어떤 이들의 반응은 “보시오, 그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 라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정말로 사랑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의 눈물은 제 때에 와서 살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라고 저들은 생각한 것이다.

37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단 말이냐고 했다. 사랑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들과 책망하는 사람들로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 다 예수님의 능력은 눈으로 보았기에 믿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했으면 진작 와서 살려줄 것이지 왜 다 끝난 뒤 와서 눈물을 흘리느냐고 빈정거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저들은 모두 틀렸다. 예수님은 살릴 수 없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구경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물을 보고 예수님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나 믿음이 없는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그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의 눈물은 그렇게 많은 기적으로 보여주며 가르쳤는데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넘어질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또한 예수님의 눈물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대적하는 영원히 멸망할 대적들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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