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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1:28-33

Dawn Word

요한복음 11:28-33

사탄의 폭정에 분노하시는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4. 25.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1:28-33 예수님과 대화를 마친 마르다는 가서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오셨다고 비밀리에 말했지만 마리아는 모두가 다 알도록 갑자기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온 조문객들이 함께 따라오도록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시는 장면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말씀은 마르다가 가서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오셨다고 비밀리에 말했지만 마리아는 모두가 다 알도록 갑자기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온 조문객들이 함께 따라오도록 했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시는 장면이다.

28절에서 마르다는 이렇게 믿음에 관해 예수님과 대화를 한 뒤 그 자리를 떠났다. 마리아에게 가서 선생님께서 와 계시는데 너를 부르신다” 라고 마리아를 불러서 가만히 말했다. 가만히 말했다는 말은 마태복음 1:19절에서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가만히 관계를 끊으려 했다고 했을 때 나온 말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알려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첩보작전처럼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29절은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서 예수께로 갔다고 했다. 마르다가 비밀스럽게 말한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나오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모두가 주목할 만큼 급히 일어나서 갔다는 것이다. 비밀스럽게 말하는 마르다와 급히 벌떡 일어나 나가는 마리아의 모습이 대조된다. 어찌보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간절히 기다렸다는 것이다. 마르다는 마리아만 알아듣도록 조용히 말했는데 이렇게 마리아가 깜짝 놀랄만큼 갑자기 일어나 나가자 모든 조문객들도 함께 놀라며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30절은예수께서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 자체는 한곳에 머물고 계신지 아니면 천천히 걷고 계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보면 아직도 마르다를 만난 곳에 계셨다고 했기에 천천히 걷고 계신다기 보다는 마르다를 만난 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뜻이다. 마르다가 마리아를 부르러 갔기에 동네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베다니에 온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계신 모습이다.

그러나 31절을 보면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바람에 마르다와 예수님이 지키려 했던 비밀은 깨어져 버린다. 31절은 “집에서 마리아와 함께 있으면서 그를 위로해 주던 유대 사람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보고 무덤으로 가서 울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따라갔다” 라고 했다. 마르다가 나갈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마리아도 마르다의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정신없이 나가는 모습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주들이 조문객들을 버려두고 둘 다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덤에 가는가 라고 생각한 것이다.

32절부터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32절에서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 발 아래 엎드려 말했다.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 그 발 아래 엎드렸다. 이는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더 친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급히 일어나는 것과 예수님을 만나 엎드리는 것을 보면 마리아가 마르다보다 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고 다. 마리아는 마르다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33절 앞부분을 보면 마리아는 이렇게 말하고 울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따라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예수님의 반응이 33절 뒷부분에 나온다.

요한은 예수께서 영으로 비통하셨다고 했다. “비통하여” 라는 말은 마태복음9:30절과 마가복음 1:43절에서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분노한 표정으로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장면에 쓰였다. 마가복음 14:5절에서는 향유를 낭비한다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쓰였다. 성경 이외의 자료들을 보면 말이 놀라 콧김을 내품으면서 소리치는 모습을 나타낼 때도 이 말을 썼다. 이러한 뜻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은 분노해서 콧김을 내품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NLT는 “deep anger” 라고 번역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처럼 분노하신 것이 장례식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분노의 의미를 제거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본래 가진 분노의 의미는 감출 수 없다. 일부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믿음이 없음을 분노하신 것으로 해석한다. 또 죄를 통해 사람들에게 슬픔과 죽음을 가져온 사탄의 강압적 통치에 분노하신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세상에 존재하는 죄와 죽음의 권능에 대한 분노로 해석하기도 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사탄이 사람들을 죄 가운데 죽게 하는 것에 대한 분노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이 단어가 가진 분노라는 의미를 감출 수 없다면 예수께서 영으로 분노하셨다는 말은 믿음이 없음에 대한 분노라기 보다는 사탄이 지배하는 사망 권세에 대한 분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 하셨기에 나사로의 죽음 자체를 그렇게 슬퍼하셨을 이유가 없다. 만약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도 슬퍼하셨다면 마르다가 똑 같은 말을 했을 때에 그렇게 슬퍼하시며 함께 우셨어야 했다. 그런데 마르다가 말했을 때는 마르다의 믿음을 바로 세워주시기 위해 대화하셨다.

이어 나오는 괴로워하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영으로 크게 분노하신 뒤 그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으로 분노하셨다는 말이 잔잔한 물에 큰 바위가 떨어진 것이라면 괴로워하셨다는 말은 그 결과 그 물이 크게 출렁이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분노하시고 괴로워하신 것이다. 만약 믿음이 없음을 보고 분노하셨다면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을 갖도록 말씀하셨어야 했다. 그러나 사탄의 권세에 대한 분노라면 어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34절에서 예수님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라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려서 사망권세를 이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려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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