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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1:25-27

Dawn Word

요한복음 11:25-27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4. 24.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1:25-27 예수께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이전 말씀에서 마르다는 예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마르다는 부활에 관해서는 자신의 가문을 통해 배운대로 마지막 때의 부활을 믿는다고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수정해서 고백하는 내용이다.

답답해진 예수님은 25절에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고 대답하셨다. 원어를 직역하면 “나는 나다,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나는 나다” 라는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표현과 같은 표현이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계속 이어지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시리즈이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신 것이다. 6:35절에서는 “나는 나다, 생명의 떡” 이라 하셨다. 8:12절에서는 “나는 나다, 세상의 빛” 이라고 하셨다. 10:7절에서는 “나는 나다, 양의 문” 이라고 하셨다. 10:11절에서는 “나는 나다, 선한 목자” 이고 하셨다. 이는 “나야 나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앞에서는 계속해서 직유법으로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대적들이 함께 듣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마르다와 단 둘이 대화하는 것이기에 사물에 빗대어 말씀하지 않으시고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분위기로 이해해야 한다. “이 답답한 사람아! 마지막 때 부활하는거 누가 몰라? 나야 나! 하나님! 내가 바로 부활이고 생명인 그 하나님이라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부활과 생명에 대해 설명하신다. 먼저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라고 하셨다. 이는 먼저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부활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하실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또 이어서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이는 자신이 생명이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이 두가지를 가르치신 다음에 예수님은 “네가 이것을 믿느냐?” 라고 하셨다. 이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친 종말론적 부활 말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믿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부활과 생명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일부는 부활과 생명을 같은 뜻으로 본다. 그러나 어떤 이는 부활과 생명을 독립적인 것으로 보며 죽은 자를 일으키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고 생명의 긍정적인 판결을 하는 원천이신 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긍정적 판결이라는 말은 마지막 심판날에 예수님이 법정에 서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라고 판결하신다는 뜻이다. 또 부활과 생명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면서 두가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다시 일으킨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에 27절에서 마르다는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바리새파의 종말론을 일부 수정하여 예수님이 바로 그 종말론적 메시야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부활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믿음은 아니다.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믿겠다는 고백일 뿐이다. 이는 마치 마태복음 16: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직도 바리새파적 신앙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대답일 뿐이다. 부활과 생명에 대한 마르다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39절에서 밝혀진다.

마르다는 예수님 말씀을 배우면서도 자신의 가문을 통해 배운 바리새파의 종말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성경을 통해 예수님 말씀을 배우면서도 대부분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생각과 믿음에 근거해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전파된 나라들마다 각 나라의 전통과 믿음과 섞여 조금씩 다르게 믿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을 내려놓고 예수님 말씀의 참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 말씀이라면 죽는 길이라도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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