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7-9 하나님의 종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매를 맞고 처형을 당했지만 말없이 끝까지 순종했다.
하: 말없이 순종하시는 예수님
나: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종은 모든 사람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6절에서 양처럼 흩어진 죄인들을 말했는데 오늘 말씀 7절은 양처럼 순종하는 종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탐욕을 따라 각기 흩어지는 양 떼와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어린 양이 대조되는 모습이다.
7절은 하나님의 종 메시야가 얻어 맞는 양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손으로 심하게 맞는 모습이다. 또 "고문을 당하였으나" 라는 말은 무릎을 꿇린다는 뜻이다. 얻어 맞고 강제로 무릎을 꿇려진 모습이다. 그러나 맞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들에게 매를 맞고 무릎을 꿇은 죄수의 모습으로 계신 것이다.
얼마나 철저히 순종하시는가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원어는 입을 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 뿐 아니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 가기만 할 뿐" 이라고 했다. 6절에서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양떼로 비유된 이스라엘은 이사야에 보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존재로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순종하신다는 것이다.
8절은 7절에서 비유로 표현된 것을 설명한 것이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아 끌려갔다" 라는 뜻이다. 끌려갔다는 말은 처형되기 위해 끌려갔다는 뜻이다. 칼빈은 "끌려갔다(taken away)" 는 말을 감옥이나 사형선고를 받는 재판정에서 구출되는 것이고 그 후에 최고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서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Calvin, Isa. 53:8). 마치 하나님께서 에녹(창 5:24)을 데려가시고 엘리야(왕하 2:9)를 데려가시는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은 분명히 앞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으로 비유된 말을 풀이한 것으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어서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라고 묻는다.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 은 죽는다는 뜻이다. 역시 속죄양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양이 죽을 때는 누군가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악한 자들에게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 나가는 것을 보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양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끼던 양이 죽는 모습을 보고는 누구나 자기 죄 때문에 죽는다고 슬퍼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이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죽을 때는 그 모습을 보던 그 세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죄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죄를 용서 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악한 자들을 위해 죽은 것이다.
로마서 5:7-8절에 보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남을 위해 죽을 때는 자신 대신 죽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고 감격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의 세대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거나 감격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한 자들을 위해 죽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
원어에서 9절은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들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의 무덤을 악한 자들과 함께 정해주었다는 뜻이다. 처형당한 죄수들은 본래 가족의 무덤에 묻힐 수 없기에 그러한 죄수들의 무덤에 묻히도록 배정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죽었을 때는 부자와 함께 묻혔다는 것이다. 악한 자들이란 복수이기에 함께 처형당한 악인들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단수이기에 한 명의 부자와 묻혔다는 것이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은 처형당한 악인들과 함께 묻히기로 정해져 있었지만 부자와 함께 묻힌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어떤 속이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7절에 보면 아무런 변명도 불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순종한 것이다. 행동이나 말로 어떤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와 함께 묻힌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본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말없이 순종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고 그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던 나 같은 죄인도 그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하셨다. 내 생각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까닭없이 욕을 먹으면서도 그러한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향한 우리의 섬김과 헌신에 대해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아무 불평없이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형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하던 암양처럼 순종하던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다.